문화유산 답사기

수원 화성의 빛나는 보물 방화수류정을 찾아서...

금모래은모래 2013. 5. 14. 06:00

 

 

지난 주말 바쁜 시간 와중에

수원을 다녀올 일이 있어 잠시 짬을 내어

수원 화성의 보물 방화수류정을 다녀왔습니다.

 

보물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는 귀한 문화재인

방화수류정은 수원 화성 성곽의 일부분에 속해 있으며

그 건축물의 아름다움이 뛰어나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럼 먼저 수원 화성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수원 화성은 사적3호로 지정관리되고 있으며,

 

요약설명

 

조선시대의 성. 조선 22대 임금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한 효심과

왕권 강화를 위한 수도 이전을 목적으로 쌓은 성이다.

실학자 정약용과 유형원이 설계를 하고,

좌의정 채제공의 주관 아래,

화성유수 조심태 등이 공사를 진행하여 성을 쌓은 후,

화성행궁, 중포사, 내포사, 사직단등의 건물을 지었다.

 

성곽을 석재와 벽돌을 섞어 쌓은 점, 거중기와 녹로 등 새로운 기기를 사용한 점,

화살과 창검, 총포 등을 방어하는 근대적 성곽 구조를 갖추고 있는 점 등에서

과학적이고 독창적인 당대 최고의 건축물로 평가 받고 있는 동시에

우리나라 성곽 건축의 백미로 꼽힌다.

“송충이도 씹어 먹은 정조의 효심”

정조는 화성으로 아버지의 묘를 옮긴 후

그 전보다 더욱 자주 찾아가 인사를 드리곤 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융건릉을 찾은 정조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묘 주변 소나무들이 송충이 때문에 다 죽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정조는 “어허, 이럴 수가. 내 땅에 사는 송충이가

어찌 임금의 아버지 앞에 있는 소나무 잎을 갉아먹는단 말이냐.

내 아버지가 비명에 가신 것도 가슴 아픈데

너희들까지 이리 괴롭혀서야 되겠느냐.

차라리 내 오장육부를 갉아 먹어라”라고 한탄하며,

송충이 한 마리를 잡아 입안에 넣고 깨물어 먹어버렸다.

 

 그 일이 있은 후, 어디선가 새들이 날아와서 송충이를 다 잡아 먹어,

소나무에는 송충이가 한 마리도 남지 않았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상세설명

화성은 서쪽으로는 팔달산을 끼고

동쪽으로는 낮은 구릉의 평지를 따라 쌓은 평산성이다.

정조는 그의 아버지 장헌세자에 대한 효심에서 화성으로 수도를 옮길 계획을 세우고,

정조 18년(1794)에 성을 쌓기 시작하여 2년 뒤인 1796년에 완성하였다.

 

실학자인 유형원과 정약용이 성을 설계하고,

거중기 등의 신기재를 이용하여 과학적이고 실용적으로 쌓았다.

성벽은 서쪽의 팔달산 정상에서 길게 이어져 내려와 산세를 살려가며 쌓았는데

크게 타원을 그리면서 도시 중심부를 감싸는 형태를 띠고 있다.

성안의 부속시설물로는 화성행궁, 중포사, 내포사, 사직단들이 있었으나,

현재에는 행궁의 일부인 낙남헌만 남아있다.

 

특히 다른 성곽에서 찾아볼 수 없는 창룡문·장안문·화서문·팔달문의 4대문을 비롯한

각종 방어시설들과 돌과 벽돌을 섞어서 쌓은 점이 화성의 특징이라 하겠다.

화성은 쌓은 후 약 200여년이 흐르는 동안 성곽과 시설물이 무너지기도 하고

특히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파손되었는데,

1975년부터 보수,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효심에서 근본이 되어 당파정치 근절과 왕도정치의 실현

그리고 국방의 요새로 활용하기 위해 쌓은 화성은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며 실용적인 구조를 갖고 있어,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화성 → 수원 화성)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 (2011.07.28 고시)

 

 

 

 

해 넘어가는 시간에 임박한

오후 6시가 넘어서 도착한 수원 화성엔

오월의 싱그러움과 더불어 많은 시민들이 방문하여

개개인의 휴식을 위한 힐링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방화수류정 앞의 돌다리...

 

 

 

 

화홍문과 방화수류정...

 

 

 

 

 

그럼 이쯤에서

방화수류정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방화수류정은

보물 제1709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으며,

 

조선 정조 18년(1794) 건립되었으며,

화성의 동북각루인 방화수류정은 전시용(戰時用) 건물이지만

정자의 기능을 고려해 석재와 목재, 전돌을 적절하게 사용하여 조성된 건물이다.

수원 방화수류정은 송나라 정명도의 시(詩) “운담풍경오천(雲淡風經午天),

방화류과전천(訪花隨柳過前川)”에서 따왔으며,

편액은 조윤형(曺允亨1725~1799)의 글씨이다.

 

평면은“ㄱ”자형을 기본으로 북측과 동측은 “凸”형으로 돌출되게

조영하여 사방을 볼 수 있도록 꾸몄으며,

조선 헌종 14년(1848)에 중수되었고,

일제강점기 이후 여러 차례 부분적으로 수리되었다.

 

주변감시와 지휘라는 군사적 목적에 충실하면서

동시에 주변경관과 조화를 이루는

조선시대 정자건축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고,

다른 정자에서 보이지 않는 독특한 평면과 지붕 형태의 특이성 등을 토대로

18세기 뛰어난 건축기술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보물로 지정된 방화수류정은

독특한 구조물 뿐 아니라 잘 보존된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임을 가까이에서

자세히 보았을때 더더욱 실감이 갔습니다.

 

 

 

 

비록 도심의 고층건물들과

함께 살아가는 지금의 현실이긴 하지만...

 

 

 

 

 

동북포루...

 

 

 

 

 

동북포루 안에서 바라본 방화수류정...

 

 

 

 

성곽을 여유롭게 거니는 이들이

너무나 부러웠습니다.

 

 

 

 

도심의 고층 아파트와 함께 어우러진

수원 화성의 성곽...

 

 

 

 

 

넘어가는 햇살 마저도 방화수류정에서

잠시 휴식하듯 보였습니다.

 

 

 

 

성곽 아래엔 유난히 많은 제비꽃들이 즐비하구요...

 

 

 

 

 

바람이 적은 날엔 이쁜 반영도 기대되는

포인트라는 생각이 문득^^

 

 

 

 

 

 

 

수원 화성 가운데 일부분인

방화수류정 주변을 잠시 후다닥 둘러보면서

우리 문화재의 우수성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으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될 정도의 

값어치를 충분히 감내할 수 있었습니다.

 

주변의 아름다운 야경을 담아내려

방문하는 이들을 뒤로하고 돌아서는 발걸음이

무척 아쉬웠지만 아주 만족스런 시간으로

방화수류정을 둘러보았습니다. 

 

잠시 잠깐 휴식하는 사이에 둘러본

사적 제3호 수원 화성 성곽의 방화수류정 주변...

 

많은 사람들이  그 아름다움에

매료되는 이유가 분명함을 다시금

가슴에 담아본 소중한 문화기행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