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대보름날 오전
문경의 김룡사를 다녀왔습니다.
들어가는 진입로가 워낙에 울창하여
거니는 자체만으로도 힐링이 되는듯 하였습니다.
김룡사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여 다양한 유래를
인터넷 검색 등으로 찾아보았습니다.
둘러보겠습니다.
보장문(寶藏門)
김룡사의 유래에 대해서
백과사전에서 찾아보았습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운달산 김룡사
경북 문경시 산북면 김룡리 410번지 소재
T , 054-552-9336 , 054-552-7006
경북 문경시 산북면 김룡리 운달산 1,097,2 m 기슭에 위치함.
588년 운달대사(雲達大師)가 창건하여 운봉사(雲峰寺)라 했다.
1625년 혜총이 중창하고 소실된 것을 1646년 의윤(義允)과 무진(無盡)이 중수했다.
절 이름을 김룡사라 한 것은 문희(聞喜:지금의 문경)부사 김씨가
이 산에 불공을 드려 신녀(神女)와 아들을 낳고 그 아들의 이름을 용(龍)이라 했더니
가문이 번창하므로 이에 불공드렸던 곳을 김룡동이라 하고,
운봉사를 김룡사로 바꾸어 불렀다고 한다.
또한 금선대(金仙臺)의 금자와 용소폭포의 용자를 따서 금룡사라 했다는 일설도 있다.
현존 당우(堂宇)로는 대웅전·극락전·응징전·금륜전·명부전·상원전 등 전각 48동이 있다.
절 입구에 '경흥강원'(慶興講院)이라는 현판이 걸린 건물이 있는데
이는 3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국내 최대의 온돌방으로서
자연지층을 그대로 이용하여 건축한 것이다.
일제시대에는 31본산의 하나로 50개의 말사를 거느린
큰 절이었으나 현재는 직지사의 말사이다.
입구엔 두사람이 팔을 벌려 안아도 모자라는
거대한 전나무들이 즐비하더군요.
문득 오대산 상원사 올라가는 길의
전나무 숲길이 생각났습니다.
어떤 소원을 비셨을까요?
운달산 등산을 마치고 내려오는
등산객들도 더러 있더군요.
하늘높은 전나무길을 따라
서서히 김룡사 안으로 들어가 봅니다.
산의 언저리에 고이 자리잡은
김룡사가 저만치 시야에 들어옵니다.
범종각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이
방문객을 반겨주는 듯 하였습니다.
소나무 숲으로 에워쌓인 김룡사는
풍수지리적으로도 아주 좋은 자리인것 같더군요.
물론 제가 그 분야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보제루(普濟樓)
웅장한 건물의 위용이 아주 좋습니다.
운달산 김룡사 안내문...
보제루 하단의 기붕부분...
계단을 올라서자 저만치 대웅전이 보이고
방금 무엇인가를 마치고 점심식사를 하러 가는
많은분들이 어디엔가로 들어가고 있더군요.
징소리도 들리고 공양때가 되었는가 봅니다.
김룡사 대웅전(지방문화재 자료 제235호)
현재의 대웅전 건물은 조선인조21년(1643년)화재로 소실되었다가
인조27년(1649년) 새로 복원하여 현재까지 이어진다.
한국 전통건축의 조형적 특성들을 두루 갖춘
다포계 건물인 대웅전은 앞면3칸, 옆면3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불때 여덟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사이에도 있는 다포양식으로 꾸몄다.
대웅전 건축 양식상 특이한 것은 건물의 기단위를
평평하게 다듬지 않고 기둥을 세워 높이가 일정하지 않다.
그러나 기둥모두 대웅전의 중심쪽으로 약간씩 기울어져
건물 전체가 안정감을 주는 기법을 사용했다.
다른 건물과의 차이점은 창호구성 방법이 필요에 따라 전면을 전부 개방할 수 있고
옆면에 쌍 여닫이 세창살을 달아 채광의 불리함을 개선하였다.
대웅전 앞 마당의 노주석(露柱石)
이 노주석을 '불우리', '광명대(光明臺)', '화사석(火舍石)',
'정료대(庭燎帶)'등 다양한 이름을 가졌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노주석은 사찰의 야간법회 때 횃불을 밝히거나
또는 숯을 피워 주변을 따뜻하게 하는 기능을 하는 석물임을 알았습니다.
이 노주석은 김룡사 2기 뿐만 아니라 이미 살펴본 대승사에 2기가 있고,
봉암사에도 2기가 있는 등 문경지역에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문화 유산이라 합니다.
전국적으로는 전북 김제 금산사에 1기,
경북 경산의 환성사에 2기가 남아 있다고 합니다.
대웅전에는 세월이 전해집니다.
대웅전 뒷편
연꽃 문양이 유난히 이쁜 노주석..
이 노주석에는 명문이 있는데
소화십오년(昭和十五年) 경진시월일(庚辰十月日)이라 새겨져 있습니다.
소화(昭和)라는 글은 누가 정으로 쪼아 마모시킨 듯합니다.
소화(昭和)는 일제의 연호인데 단기로는 4283년이요, 불기로는 2484년이며,
서기로는 1940년입니다. 일제 말기의 흔적입니다.
거대한 창고 건물의 고즈넉함이 너무 좋습니다.
울퉁불퉁한 기둥의 생김새가 친환경적이서
더 그런가 봅니다.
볕이 잘 드는 곳엔 역시나 항아리가...
공양을 위한 발길들이 분주합니다.
얼핏 보기엔 무슨 서원같습니다.
돌담과 소나무와 파란 하늘이 너무 멋지더군요.
경내를 거닐어 보았습니다.
멀리 바라 보이는 산엔 아직 잔설이 가득하지만
봄빛을 닮은 기운이 전해지더군요.
앙상한 담장이 조금은 메말라 보이긴 해도
제법 운치있어 보였습니다.
상선원(上禪院)
예전에는 선원으로 사용했으나 지금은 35점의 고승 진영과
순조 30년((1830)에 조성한 시왕탱, 철종 9년(1858)에 조성한
지장탱을 봉안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상선원은 성철 스님이 김룡사에 머무실 때
여기서 수행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림자도 마냥 좋습니다.
저 멀리 투박한 작은 삼층석탑도 보이더군요.
경내 곳곳엔 소원을 빌었던 귀한 흔적들이...
대형창고
휘어있는 자연 그대로의 나무기둥은
보면 볼수록 멋지더군요.
요사채인것 같습니다.
이 사진에서도 절간이라는 분위기보다는
어느 서원같은 분위기가 물씬 풍겨 나더군요.
이 김룡사는 시대를 풍미했던 고시생들로
발 디딜틈이 없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더군요.
어느 보살님께 직접 여쭤보니
요즘은 공부하는 고시생들이 거의 없다고 했습니다.
힐링의 길을 어느 누군가 거닐고 있습니다.
문경시 운달산 김룡사...
김룡사 명부전 목조지장삼존상 및 제상(지방유형문화재 제285호)
김룡사 명부전에 봉안된 불상은 지장보살 삼존상을 비롯하여
시왕상, 판관, 사자, 인왕상 등 총 21구(軀)의 목조상이다.
주존인 지장보살이 대좌위에 앉아있고, 그 양옆에는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의 협시가 서 있으며 이 지장삼존의 좌우에 시왕이 배열되어 있다.
무독귀왕의 복장에서 발견된 발원문에 의하면 이 형상들은
1714년(숙종40년)에 조성된 것이 확실하며,
이들 목조상에 입혀진 채색은 18세기 당시의 것으로 물감흔적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이처럼 제작연대가 뚜렸하며 각 시왕상에 그 명칭이 적혀있는 등 완성도가 높다.
명부전으로 가면서 바라본 김룡사 전경
건물들의 위치가 두서없어 보이지만
배치된 이유가 분명 있을듯 하였습니다.
김룡사 입구쪽의 해우소가 정겹습니다.
돌아 나오면서 김룡사로 들어갔던
울창한 숲을 다시금 바라 보았습니다.
산소창고와도 같은 김룡사 진입도로는
푸르름이 머금을때면 수많은 사람들의 힐링코스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하더군요.
김룡사는 사찰 그 자체가 좋습니다.
들머리의 숲길도 멋지구요.
고즈넉함과 평온함이 깊이 묻어나는
그 지형이 소나무숲에 에워쌓여 있어 더 좋습니다.
이토록 아름다운 문경 운달산 김룡사는
무엇하나 소원하지 않고 마냥 거닐기만 하여도
무진장 큰 기쁨을 주는듯 하였습니다.
혹여 문경 여행을 가시거던
슬그머니 김룡사를 방문해보세요.
힐링의 숲길이 반가이 맞아줄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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