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흐린날 경북 봉화군 해저리 바래미
전통문화마을을 거닐었습니다.
고택과 마을안길이 유난히 아름다운 바래미 전통문화마을은
현재 대부분의 고택에 주민들이 실제 거주를 하고 있어
보존이 아주 잘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럼 아름다운 바래미 마을을 거닐어 볼까요.
해저리 바래미 마을은 봉화읍 소재지에서 영주쪽으로
약 2km정도 떨어진 해저리에 의성김씨 집성촌이 이루어진 곳이다.
이 마을은 저지대에 위치하고 있어 외관상으로 국도보다 낮은 곳에 있어
도저히 취락(聚落) 형성 조건이 되지 않는 곳이라고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곳의 토질은 사토로서 물빠짐이 매우 좋아 배수가 잘 된단다.
그래서 주거할 수있는 마을이 형성되었든 것이다.
바래미 마을의 어원은 이곳 전체가 하상(河床)보다 낮은
바다였다는 뜻으로 '바다밑’인 바래미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100여호의 주민들이 식수로 썼던 해저리에 단하나뿐인 왕우물..
마을 어귀에서 가장 먼저 반겨주는 이 우물은
수량이 정말 풍부한것 같다.
마을을 거닐어 보았다.
묵언하듯 거니는 동안의 바래미 마을길은
내 고향의 엄마의 품인양 평온하기 그지 없다.
길
-윤동주-
잃어 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 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기우뚱 기울어진 오래된 집에도
아직은 누군가 기거하고 있는듯 하다.
남호구택...
남호구택은 일제 때 경상도의 명망 높은 부호인
남호 김래식 선생이 살던 곳.
선생은 상해임시정부의 군자금 모집 시 전 재산을 저당하고
대부받아 임시정부에 군자금을 제공했다고 한다.
가지런한 마을길에서
비록 재단장된 느낌을 지울수는 없었지만...
봉화유림의 요람 의성김씨(義城金氏) 집성촌 바래미(海底)마을
조선시대에는 유교(儒敎)를 숭상(崇尙)하여
忠ㆍ孝ㆍ烈을 국시(國是)로 삼게 되었으며,
사대부집안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들도 친족(親族)과
가문(家門)을 중히 여기는 문화가 지배하던 시에
봉화(奉化)는 안동과 버금가는 양반 문화(兩班文化)가
면면히 이어져온 유서 깊은 고장이다.
우뚝선 고령의 감나무가 좋다.
금새라도 으스럴질듯한 기왓장의 품새에서
세월의 무게가 느껴진다.
전체적인 마을의 모양새가 참 안정적이고
평온해 보인다.
봉화 해저리 바래미 전통문화마을...
넘어가는 겨울 햇살이 기왓장에 가만히 내려 앉는다.
어쩜 쓰러질듯한 돌담길을 기대했을지도 모를
욕심쟁이 여행자의 맘이었지만
새로이 단장한 그 기왓장의 안정감에서
아쉬움을 달려보려 애쓴다.
마을 곳곳엔 다수의 고택이 즐비하며
전설속의 정자들이 요소요소에 자리하고 있다.
고택과 마을길이 유난히 좋은 해저리 바래미 마을..
마을안길은 너무 조용했다.
가끔씩 들려오는 멍멍이 소리외엔...
돌담길
권 동 기
모양없이 쌓아올린 돌담에
처량한 낙엽이 떨어진다.
붉은
푸른
노오란 낙엽들
책갈피에 꽂아두고
멀리 멀리 떠나버린 님의 미소들이
굽은 길따라 다가올 것 같은 그리움들
그리운
정겨운
보고픈 얼굴들
동심의 그림자를 안고
돌담 길을 돌던 그 모퉁이에
사무치는 옛 사랑이 하나 둘씩
식어버린 눈물속에 아련히 피어난다.
만회고택 행랑채
3.1운동 직후 유림(儒林)들이 심산(心山) 김창숙(金昌淑)을 중심으로
이곳에 모여 파리 만국평화회의(萬國平和會議)에 제출한
독립청원서(獨立請願書)를 작성한 곳이기도 하다.
또 1925년 유림단(儒林團)이 독립자금(獨立資金)을 모을 때
영남 북부지방에서는 이 집에 모여 논의(論議)하기도 했던 역사의 현장이다.
고택을 지키는 이의 심성이 전해진다.
해저 만회고택...
봉화 해저 만회고택(奉化海底晩悔古宅)
만회고택은 조선 후기의 문신
김건수(金建銖)가 살던 집이다.
김건수는 순조 30년(1830)에 과거에 급제한 이후
현감(縣監), 부사(府使)를 거쳐 우부승지(右副承旨)를 지냈다.
사랑채인 명월루(明月樓)는 그가 지었으며 철종 1년(1850)에 수리한 바 있다.
안채는 김건수의 6대조가 이 마을에 처음 들어와서
이곳에 살던 여(余)씨에게 샀다고 전한다.
사랑채는 기단이 높아
위풍당당한 모습을 가지고 있으며,
전면에 넓은 마루를 가지고 있다.
누마루는 멋진 공간을 만들어내는 장소가 된다.
바라보는 방향마다 다양한 풍경이 전개되도록 구성되어 있다.
사랑채에 걸린 청풍헌(淸風軒)이라는 현판은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듯 느껴지게 하며,
누마루에 걸린 명월루(明月樓)라는 현판은
밤마다 누마루에 가득 찰 달빛을 생각하게 만든다.
만회고택의 담장이 참 길기도 하다.
마을안길에서 만회고택으로 넘어가는 길..
볼수록 멋진 돌담길이다.
단순하게
고택과 마을안길이 이뻐서 찾은곳...
봉화군 해저리 바래미 마을.
하지만 이곳에서 독립운동과 관련된 다양한 역사적인
사료들을 만나게 되어 가슴이 두근거렸다.
예상외의 수확을 얻은것처럼
또 다른 시각으로 보여짐은 여행자의 입장에서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 모르겠다.
이렇게
오래된 고택과 아름다운 마을길의
바래미 마을을 묵언하듯 거닐어 보았습니다.
'내 여행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음성동요학교 운동장에는 빨간색 대형 피아노가 있다... (0) | 2013.03.08 |
---|---|
[여주여행] 고집스런 투박함이 좋은 나무꾼과 선녀... (0) | 2013.03.07 |
문경여행의 숨은 비경 운달산 기슭의 김룡사... (0) | 2013.02.27 |
성냥갑을 닮은 간이역 내마음의 풍금 가은역... (0) | 2013.02.26 |
힐링할 수 있는 문화동산 용인 mbc 드라미아 그리고 ... (0) | 2013.02.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