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답사기

보물 이야기와 문화유산 답사기에 얽힌 내력...

금모래은모래 2012. 2. 16. 14:47

 

 

이완 장군의 묘소를 다녀 오면서

예정된 돌잔치에 아직은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

인근에 위치한 보물 두점을 더 보기로 하고

부리나케 달려갔습니다.

서쪽하늘로 서서히 해가 넘어가고 있었거던요.

 

그래서

오늘은 경기도 여주의

금모래은모래 강변 유원지 들어가는

초입에 위치한 영월루와 보물 두점을 소개해 드리려 합니다.

 

덤으로

왜 제가 이렇게 분주한 직장 생활을 하면서

유독히 문화유산 답사를 즐겨라 하는지

그 실체도 쬐끔 알려 드릴께요^^ 

 

 

 

 

 

 

영월루 누각아래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차문을 여는 순간

얼마나 바람끝이 차가운지

막상 현장에 도착은 했지만

도저히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이완 장군 묘소를 나오면서

카메라 렌즈도 탈착해 버렸기에

새로이 셋팅하는것도 왠지 귀차니즘으로

다가왔구요.

 

이왕 왔는데 그냥 돌아가긴 그렇고

그래서 작은 호주머니 카메라 한대만 챙겨서

가장 빠른 시간내에 잠시 한바퀴 휭하니 돌고 올 요량으로

나름 부지런을 떨었습니다.

 

조금은 길어진 듯 하지만

한뼘 남은 햇살도 서쪽 하늘로

서서히 넘어가고 있었기에 맘은 더 바빴답니다. 

 

 

 

 

 

 

여주 하리 3층석탑..

 

뉘엇 뉘엇 기울어가는

일몰 그 특유의 빛을 뒤집어 쓴

탑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노오란 기운은 한낮의 그것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였습니다.

 

 

 

 

 

 

오늘은 설치된 안내문만 보시고

별도의 설명을 부가하진 않겠습니다^^

 

 

그저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며

저 고즈넉한 두개의 탑은

보물 91호와 92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는 사실과

경기도 여주군 소재지에 저런 탑이 있다는

정도만 아셔도 충분할것 같습니다.

  

 

 

 

 

 

요 사진 한장 찍어 볼려고 참 애를 많이 썼답니다.

우뚝선 탑을 기준으로

내 위치가 더 높은 언덕에 위치하였기에

도저히 자세가 안 나오는겁니다.

그렇다고

탑을 옮길수도 없구요. 

 

맘에 쏙 들진 않지만

겨우 요렇게 한번 담아보았습니다.

일몰과 어우러진 우리의 보물 제92호의 위용입니다.

 

 

 

 

 

 

 

여주 창리 3층 석탑...

 

 

두개의 탑신은 5m 정도의 거리를 두고

나란히 자리하고 있으며,

이 탑은 보물 제91호로 지정 관리되고

옆의 92호 보다는 훼손의 정도가 더 심한것 같았습니다.

 

고려 중기의 탑으로 추정되며

창리 석탑이라고 명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창리니 하리니 하는것은

여주읍내 동네의 지명들입니다. 

 

 

 

 

 

 

 

두 탑 모두 현재의 위치가 아닌

다른곳에 있던것을 지금의 자리로

모셔온 것 같습니다.

 

 

 

 

 

 이쁘죠...

 

일몰과 함께 한 우리 보물의 자태..ㅎㅎㅎ

 

 

 

 

 

 

나란히 나란히 나란히~~~~

 

 

 

 

 

조금만 더 거리가 멀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답니다.

 

언덕진 곳에서

별로 안 나오는 자세로

겨우 겨우 촬영은 했지만...쩝쩝쩝~~~

 

 

 

 

 

 

탑신의 여러 곳에서

오랜 세월의 흔적들이 묻어나더군요.

 

 

 

 

 

 

'기원'

 

 

 

 

 

 

새마을 운동이 한창일 즈음인

1970년대 초 쯤이니까 지금으로부터

거의 사십여년 전의 일입니다.

 

고향의 저희 아버님께서는

특별한 행사가 있거나 모임이 있으시면

일반 관광지를 경유하는 단순한 관광보다는

꼭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를 둘러보시는

문화유산 답사를 즐겨하셨습니다.

 

또한 다녀와서는

기념품 등을 보여 주시며

그곳의 문화라던가 다양한 이야기들을

어린 막내인 저에게 일일이 설명해 주시고

자랑삼아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알려 주셨습니다.   

 

 

 

 

 

 

 

보물로 지정 관리되고 있는

두 탑신의 언덕 뒷쪽엔

이렇게 영월루라고 하는 누각이 있습니다.

 

익공의 형태나 가구수법으로 미루어

18세기 말의 건물로 추정되며

경기도 문화재 자료 제37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답니다.

 



   

 

 

 

지난 2010년 3월.. 8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신 저희 아버님은

살아생전에 성품이 상당이 곧았으며 

젊은 시절엔 지역의 씨름대회에서 몇번이나

입상을 할 정도로 기골이 장대하였답니다.

 

그러던 아버님이

지난 1977년도 쯤엔가 백제 문화권인

부여의 낙화암과 고란사 등지를 둘러보고 오시고선 

그곳에 대해서 장황하게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현장을 안 가보고도 다녀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 후 세월이 지나

아버님의 막내 아들인 저는

2009년 가을날 3박 4일 일정으로

백제 문화권 탐방이라는 주제아래

충남과 전북의 백제문화권을 중심으로  

나홀로 베낭기행을 강행하게 됩니다.

 

어린시절 두눈을 바로 뜨고

아버님으로부터 자세히 들었던 그 역사의 현장인

낙화암의 백화정에 홀로 올랐답니다.

그 얼마나 감개가 무량하던지

당시의 심정은 이루 말로 표현 못할 정도였답니다.

 

그러고 보니

아버님을 통한 간접적인 문화유산 답사를

포함하면 저도 문화유산 답사의 구력이

만만치가 않네요..ㅎㅎㅎ

 

물론 학창시절의 수학여행이라던가

그후 작게 또는 크게 한번씩 직접 다녔던

숱한 답사기를 포함하면

전문가 정도는 아니지만 여느 일반인들 중엔

나름 좀 댕겼구나 할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전면에서 바라본 여주의 영월루랍니다.

 

 

 

요즘도 간혹

문화유산 답사를 마치고

집에 도착하면

책이나 인터넷 등에서 관련 자료도 찾아보고

평소 늘 즐겨 읽으며 좋아라하는 책인

'조선왕조실록'을 다시금 뒤적거려 보기도 한답니다.

 

그래서 근간엔

문화유산 탐방에 대한 욕심을 좀 줄여서

멀리 있는것은 기회가 생길때마다 별도로 챙기고

일단은 내가 살고있는 가장 가까운 곳의

문화재부터 하나 하나 챙겨 보는게 우선이 아닌가

생각하여 가까운 곳을 찾아보려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오늘은

경기도 여주의 보물로 지정된

소중한 문화재인 두점의 탑과 누각 그리고 

아름다운 우리의 문화유산 답사를 하게된

제 개인적인 동기 부여의 이유를 벗삼아

몇가지 사례를 소개해 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