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금욜 오후
청송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 선배님으로부터
샴실로 전화 한통이 왔습니다.
제 블로그를 보시고
지난번에 제가 감곡에서 친구랑
청국장 먹었던 식당을 말씀하시면서
그 근처에 유명하고 오래된 성당과 순례지가 있는데
그곳에 가 보았느냐 하더군요?
매번 근처를 다니긴 했지만
실제로 그곳을 방문해 보지는 못했다고 하자
의미있는 곳이니 기회가 있으면 한번 다녀오라고 하시더군요.
마침 토요일 오후에
그 근처에서 후배 직원 아이의 돌 잔치가
예정되어 있어 조금 일찍 서둘러서 집을 나섰습니다.
그래서 감곡성당이라고 칭하는 매괴 성모 순례지를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야트막한 작은 산으로 형성되어
전체 산을 한바퀴 도는데 한시간 정도가
소요된것 같습니다.
최근에 예정에 없이 천주교 성지를
두곳이나 다녀오게 되었네요.
개인적으로 신봉하는 종교가
가톨릭의 천주교 신자가 아니어서
용어도 낯설고 그러했지만
1930년에 지어진 오래된 성당의 위풍당당한 모습에서
우리의 지나온 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감곡본당은 1896년 설립되어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초대 본당 임가밀로 신부는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으로
1893년 서품후 받은후 바로 입국하여 그다음해인1894년 첫 본당으로
유서 깊은 교우촌,신학당이 있었던 여주 부엉골에 부임하게 된다.
하지만 본당 사목지가 북쪽끝에 위치해 있을 뿐 아니라
산지부락 이어서 본당 이전을 생각 하던중 사목 방문차 여주를 지나
장호원에 이르러 산밑에 대궐같은 집을 보고
이곳이 본당 사목지로서 가장 적합 하다는 것을
직감하게 된다.그즉시 임가밀로 신부는
"성모님 만일 저 대궐같은 집과 산을 저의 소유로 주신다면
저는 당신의 비천한 종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그 주보가 매괴 성모님이 되실 것입니다."라고 기도 하였으며,
부엉골로 돌아가서 매괴 성모님께 끊임없이 청하였다.
당시 대궐같은 집은 명성황후의 육촌 오빠인 민응식의 집이었고
1882년 임오군란때 명성황후가 피신왔던 곳이기도 하다.
1896년 5월 성모성월에 그 모든 집터와 산을 매입,
매괴성월인 10월7일 본당을 설립하기에 이른다.
결국 임가밀로 신부가 처음에 기도한대로 감곡본당을
성모님께 봉헌하여 이곳이 감곡매괴성모순례지성당이 된 것이다.
- 출처 : 감곡매괴성모순례지성당 홈페이지-
감곡성당(甘谷聖堂) 또는 감곡천주교회는 1896년 프랑스인 임가밀로 신부가 건립한 가톨릭 성당이다. 전국에서 18번째로 세워진 성당이며 충북 도내에서는 최초로 건립된 성당이다.
임가밀로 신부는 1914년 최초로 성체거동행사를 개최하였고 문맹퇴치를 위하여 학교를 설립하여 일본 식민지하에서 억압받는 청년과 아이들에게 민족의식을 심어주고 한글을 가르쳐 민족의 뿌리가 마르지 않게 하였다.
1930년 지금의 고딕식 성당을 건립하고 1934년 지금의 화강석으로 된 사제관을 2층으로 지었다.
한국 전쟁 당시 북한군이 성당을 침입하여 감곡성당에 모셔진 성모상에 총을 7발 쐈다. 그런데도 성모상은 깨지지 않았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때 성모상은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 출처: 백과사전 -
본당의 벽돌과 창문틀에서는
오랜세월의 흔적이 아직도 그대로
묻어나고 있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82년전에 지어진 건물,,,
고딕 양식의 상당히 웅장하고
위풍당당한 건축양식이 당시 시대적인 상황과
대외적인 문화교류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좋은 사료의 가치도 있는것 같습니다.
본당 입구에 선명하게 새겨진 1930....
1914년부터 성체 거동을 시작한 110년 역사의 본당
매산 기슭 감곡성당으로 오르는 길목의 작은 팻말 내용이 인상적이다.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88호 감곡성당은 파리외방전교회 시잘레(chizalle)신부가 설계,1928년 공사에 들어가 3년만에 완공한 고딕식 붉은 벽돌 성당은 110년간 충북은 물론 경기 남동부 일원에 복음의 씨앗을 뿌려온 믿음의 고향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다는 36.5m의 중앙종탑에 8각 첨탑 또한 위압감을 주기보다는 포근하게 다가섰고 금세라도 종소리가 퍼질듯 했다. 성당 발치엔 감곡 들녘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감곡 본당(甘谷本堂)은 충북 음성군 감곡면 왕장리 (旺場里) 357-3 소재하는 11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성당이다. 1896년 9월 17일 본당으로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매괴의 성모. 설립 당시의 명칭은 ․장호원 본당'(長湖院本堂)이다. 감곡 매괴성모성당은 처음부터 성모님께 봉헌된 곳이다. 또한 성모신심과 성체신심을 바탕으로 신앙의 못자리가 된 곳이며, 150여명의 성직자와 수도자를 배출한 성소의 못자리이기도 하다.
감곡본당에서만 51년간 사목하다 세상을 떠난 임 가밀로(Bouillon Camill, 부이용, 한국명 임가미, 任加彌) 신부는 감곡 공동체의 주춧돌로 남아 있다. 둥근 차양의 선교사용 모자를 오른손에 들고 긴 수단을 걸친 채 매산기슭 성모광장의 로사리오 성모를 응시하는 듯한 임 가밀로 신부의 동상 모습은 감곡 공동체에 드리워진 임 신부의 그림자를 그만큼 반영하는 것처럼 보였다.
성당에 들어서면 제대 정면에는 한국전쟁 때 인민군에게 7발의 총탄을 맞았다는 본당 주보 묵주기도 성모상이 눈에 들어왔다. 프랑스 루르드성지에서 제작돼 1930년 성전 봉헌 당시 제대 중앙에 안치된 성모상은 7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건재했다.
감곡 성당의 성모신심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한국 선교사 임 가밀로 신부의 성모신심을 이해하는 것이 열쇠다. 1869년 성모발현지 루르드에서 불과 20㎞ 밖에 떨어지지 않은 프랑스 남서부 타르브교구 비에유 아되르에서 태어난 임 신부는 정기적으로 어머니와 함께 루르드를 방문, 자신을 루르드 성모께 봉헌하며 성장했다.
그 대표적 사례가 매산 중턱의 신사(神社) 건립 사건. 일본인들이 매산 중턱에 신사를 지으려고 한 것은 1943년. 이에 임 신부는 성당 뒷쪽 매산에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무염시태) 기적의 패'를 묻어 두고 성모께 "이 공사를 중단하게 해주신다면 이곳을 성모님께 봉헌하겠다"고 기도했다. 그런데 일인들이 공사를 진행하려 하면 여러 가지 기상이변이 일어나고 큰 짐승이 출현하는 바람에 번번히 공사가 중단됐으며 결국 2년 뒤 해방이 되면서 공사는 완전히 중단됐다고 전해진다. 그
매산 초입에 들어서면 마주하게 되는 '묵주기도 15현의'는 특히 묵주기도 15단을 조각으로 표현해 놓은 기도처로, 성모신심의 진수를 보여준다. "성모신심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신앙생활의 중심에 두고 성모와 같은 마음으로 예수를 생활의 전부로 살아가는 데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매괴 성모 순례지 개발은 특히 '어머니의 품'이라는 주제 속에서 프로그램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다. 기도와 성체성사 적극 참여, 고해성사, 성체조배, 희생 및 금식 권면 등 성모께서 루르드나 파티마, 메주고리예 등지에서 발현해 남기신 다섯 가지 핵심 메시지를 중심으로 매달 첫 토요일 8시마다 진행되는 '기도와 찬미의 밤'은 매괴성모순례지의 핵심 프로그램이다. 또 평일이나 주말 1일 피정 희망자들을 위해 미사와 감곡 매괴성당 소개, 매괴유물관 관람, 성체조배, 산상 십자가의 길 기도, 음악피정 등으로 이뤄진 1일피정을 진행하고 있다.
사제관....
정확하게 뭘 하는곳인지는 모르겠네요.
"나는 여러분을 만나기 전부터 사랑했습니다"
본당의 좌측에는 이렇게
감곡성당의 미니어쳐가 만들어져 있더군요.
성당 옆에 위치하여 현재 매괴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이 건물도 1934년에 지어진 오래된 건물입니다.
노부부께서 촛불을 켜고 있었습니다.
◆ 청주교구 감곡본당과 태극기
구한말의 태극기는 청주교구 감곡본당에도 인연이 이어졌다.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 임 가밀로 신부는 한불조약 이후 조선에 입국, 고종황제로부터 직접 태극기를 하사받는다. 이 태극기가 그 유명한 감곡성당 소장본 태극기로, 안타깝게도 현재는 사진만 남아있을 뿐 원본 태극기는 전해지지 않는다.
매괴산 순례지로 출발하는 시점에서
다시 바라본 성당방향...
순례 코스인 매괴산으로
올라가는 길입니다.
이 길은 십자가의 길이라고 하네요.
휴일이라 그런지 순례지 코스마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서서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매괴고등학교를 지나 감곡성당으로 오르는 길은 봄에는 철쭉이 화려하게 피어나고 여름은 초록빛이 시원함을 더하고, 가을에는 붉은 단풍이 역사의 현장을 대변하고 겨울이면 가지마다 소복이 피어난 눈꽃이 그모든 것을 덮고 인고의 세월을 보내온 감곡성당의 오늘을 말해주는 듯하다.
이곳 감곡성당에서는 한국 최초의 성체대회가 1914년 성체성혈대축일 행사가 거행되었다. 성체대회 장엄미사를 봉헌하고 2000여명의 신자들과 12분의 사제들이 매산정상에 성체를 모시고 올라와 동서남북, 조선팔도를 향하여 성체강복을 하였다.
매괴산 정상입니다.
인근의 38번 국도에서도 보이는 이곳을
참 많이도 봐 왔지만 이번에 처음으로 다녀오게 되었네요.
전체적으로 나무들의 관리가 참 잘되고 있었다.
하산하는 방향에 임가밀로 신부님의
묘가 있었지만 가묘였다.
1983년 본당으로 이장했다고 한다.
동네 주차장에서 바라본 성당.
충청도 지방의 작은 야트막한 야산에
이렇듯 웅장한 성당이 오랜세월
한자리를 지키고 있네요.
돌아오면서 청미천 건너 장호원에서 바라본
매괴 성지 순례지와 감곡성당...
주말 시간에 특별히 시간 내기란
우리네 환경이 그리 녹록지가 못해
늘 특별한 행사와 더불어 움직이는 코스가 정해진다.
이렇듯
이번에도 예정에 없던
역사적으로 소중한 의미가 부여되는 감곡성당을
방문하고 우리나라 근대문명의 태동과 함께
살아 숨쉬는 현장을 다녀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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