솟 대
임보선
눈에 담고 맘에 담고 혼자 매~만지며 |
당분간은 설날 기획 특집으로
운영되어야겠네요^^
처갓댁에 갔다가 봉화를 경유하여
영주 방향으로 나오면서 다시 부석사쪽으로 향했다.
물론 부석사를 가려고
그쪽으로 방향을 튼건 아닙니다.
그러면서 지방도를 서행하며 가고 있었는데
휴게소 비슷하게 생긴 '뜬돌아래 옹기나라'라는 팻말을
보면서 그냥 지나쳤다.
그때 옆자리에 앉아있던 울 딸넴이 왈
"아빠 저기 희한한게 많은것 같은데 들렀다 가요"
하는게 아닌가..
벌써 지나쳤는데 후다닥 다시 차를 돌렸다.
뜬돌이라는 단어가 선택된걸 보니
부석사와 가까운 곳이란게
지대로 실감이 났다.
그곳은 부석면 소재지였던 것이다.
물론 결과적으로 부석사를 다녀온건 아니지만
인근으로 거쳐온 모양새가 되었던 것이다.
옹기로 만들어진 조금은 귀하게 생긴 많은 솟대와
다양한 얼굴의 옹기들이 즐비하여
나름의 볼거리로는
충분했다.
옹 기
염수연
추녀 끝에 한 자락 노을을 걸고 오늘도 가슴에 풀었구나
수더분한 몸매로 담 밑에 앉아 투정 없이 살아온
여염집 여인 세상살이 싱거우면
소금을 담아 말없이 건네주는
말없이 건네주는
그대 옹기여,
목덜미도
다소곳 눈웃음 짓고
오늘도 주인을 닮았구나
다시 봐도 은근한 얼굴을 하고 어디서나 만나는
정다운 여인 세상살이 무심하면 속으로 울고 말없이 살아가는
말없이 살아가는 그대 옹기여
옹기와 고래
유성순
어머니 발품 팔아
물물교환으로 장만해 준 옹기
그 속엔 바다 향기 배어 있다
국밥집 가마솥 모락모락 새는 입김
장터마다 시끌벅적 정겨운 잔칫집
울산바다 고래 고기 외고산 옹기에다
차곡차곡 소금 뿌려 재워 놓고
오일장에 내다 팔던 어촌풍경들
재래시장 다녀 봐도
호랑이 담배 피던 옛 시절이라
마당 한 귀퉁이 그 바다 향기는
전수받지 못한
불심 깊은 어머니 사랑이어라
옹기와 관련되고 솟대와 관련된
여러가지 노랫말이라던가 싯귀들을 찾아봤다.
생각보다 많은 글귀들이
인터넷 세상을 헤매고 있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슬그머니 채포해 버렸다는 사실.
솟 대
김하리
“얼마나 컸길래 얼마나 간절했길래
꿈 먼저 달려왔을까.
하늘 끝, 뻗은 눈빛만으로도
아, 그 그리움 너무나 크네요
오늘 한 잎의 꽃이 집니다
환하게 빛나던 햇빛 뜨겁게 집니다
퍼내어도 퍼내어도 마르지 않네요,
그리워 그리워서 하늘가에 가뭇 피어나는 눈빛.
온 몸으로 피어납니다
하늘 너머 보일까 강물처럼 출렁일까
아 깊어 질대로 깊어졌네요
기다리다 기다리다,
오늘 한 잎의 꽃잎으로 집니다
환한 햇빛 속으로 집니다
달빛 속으로 뜨겁게 집니다
이제는 알 것 같아요
무상(無常)중에 피고 지는 그 사랑을.”
내부 사진이다.
일단 들어갈때 미안한 마음에
주머니 카메라만 챙겨서 들어가서
그냥 앞쪽에 보이는 몇 장면만 똑딱이로 담아봤다.
그런데..
나오면서 출입문 한쪽에 붙어있는 글귀를 봤다
"사진 촬영 금지'
에궁......
이런~~~
엄청 쑥스럽고 미안했다.
물론 그 사장님(?)께서는 다른 일이 바쁘신 듯해서
내가 촬영하는걸 보시진 못했겠지만
그래도 실수를 한것 같았다.
하지만
실수로 찍은 몇컷
되지않는 실내 사진을
불량스럽게(?) 사용하지 않고
이렇게 소개글 정도의 좋은 취지로만
사용하니 금번에 한해서 용서를 구하는 바입니다.
"죄송합니다. 담부턴 카메라 안 갖고 들어갈께요"
소박한 찻집을 닮은 내부의 여러 구성도가
판매를 위해 진열된 공간과는 별도로
참 평온해 보였다.
괜스레~~ 향 좋은
우리 고유의 차 한잔이 생각나기도 하구...
생활자기부터
다양한 그릇들과
용도를 모르는것까지
하여간 수많은 작품들이
또다른 주인을 기다리리고 있었다.
솟 대
김명숙
우주목에 앉아
활주로 앞에 선 비행기처럼
하늘을 응시하는 새
새는 온몸으로 소리를 듣는다
풍년 들게 (풍년 들게 풍년 들게)
해달라고(해달라고)
만선 되어 (만선 되어)
돌아오게
해달라고(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는(간절히 기도하는, 간절히 기도하는)
소리를 듣는다
기우는 해를 부리에 물고
날갯죽지에 힘을 뻗친다
지평선을 끊고
공중을 박차고 오른다, 솟구쳐 오른다
꿈꾸는 자만이 꿈을 이룰 수 있으므로
새는 하늘을 향해 깃을 세우고
사람들은 꿈을 위해
지상에 안테나를
세운다
우주목에 앉아
활주로 앞에 선 비행기처럼
하늘을 응시하는 새
옹기[甕器]란 과연 무엇인가?
근대·현대의 개념으로 무유(無釉) 또는 시유(施釉)를
한 도기질(陶器質) 그릇의 총칭.
원래는 이와 같은 질적인 구분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릇의 종류를 가리키는 것으로 저장용 큰 항아리를 말한다.
옹(甕)이 큰 항아리를 가리키는 최초의 자료는
경주 안압지에서 출토된 대옹(大甕)에 음각된 '십구입옹'(十口入瓮)으로,
통일신라시대에는 도자기를 '陶' 또는 '瓦'로 표현했으며
'瓮'은 그릇의 종류를 의미했다.
이러한 표현은 고려시대에도 그대로 사용되었으며
조선시대에 와서 그 개념이 변했다.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도자기 제작소를
도기소(陶器所)와 자기소(磁器所)로 구분한 반면,
〈경국대전〉에는 제작자를 와장(瓦匠)과 사기장(沙器匠)으로 구분하고 있다.
또 옹장을 황옹장(黃瓮匠)이라고도 표현하고 있어
조선시대에는 '瓮'의 개념이 사기(磁器質)가 아닌
옹기(陶器質)를 의미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근대에 들어오면 도자기의 생산체계가 자기와 옹기로 양분되면서
자기를 제외한 토기·오지·질그릇·옹기 등을 통틀어 옹기라고 한다.
옹기는 제작방법에서 자기와 큰 차이를 보이는데,
성형기법은 초기 철기시대에 중국으로부터 전래된
타날법(打捏法)이며 유약을 씌우는 경우에는 잿물[灰釉]을 사용한다.
가마는 전통적인 통가마[登窯]이며 1번만 번조하여 완성한다.
일제강점기 이후 자기제작소는 외래의 기술이 들어오면서
전통적인 기술이 사라졌지만 옹기의 경우는 전통이 잘 보존되어왔다.
그러나 근래에 등장한 플라스틱·스테인리스 등과 같은
대체재료에 의해 그 수요가 감소되고 있다.
[다음 백과사전 펌글]
솟 대
김필연
1.
얼마나 아리면 저리도 기인 꼿발로 섰을까
가슴에 안으면 저려서 가슴에 묻으면 아려서
기인 기다림 풀어풀어 기러기 나래위에 올려놓았나
행여 높으면 보이려나 나래 타면 행여 닿으려나
오늘도 기인 기다림 속절없이 높아만 가고
한 뼘 길어진 꼿발은 아린 가슴으로 야위어 가는가
한 뼘 길어진 꼿발은 아린 가슴으로 야위어 가는가
2.
얼마나 그리우면 저리도 기인 꼿발로 섰을까
가슴에 안으면 저려서 가슴에 묻으면 아려서
깊은 그리움 풀어풀어 기러기 나래위에 올려놓았나
행여 높으면 보이려나 나래 타면 행여 닿으려나
옹기의 인상이 정말 명품이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옹기라고 생각하면
매끈한 몸매로 잘 빠진 옹기만 생각을 하는데
이렇게 웃음을 주는 미소가 그윽한 옹기도 있단 사실에
그저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사실 개인적으로 솟대를 참 좋아라 한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솟대들을 경험하게 되고
또한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그런데 요렇게 깜찍한 옹기로
만들어진 솟대는
처음봤다.
쳐다보는 방향도 제각각이었으며
어느것 하나 모양새가 같은 녀석이 없었다.
우리 딸넴...
스마트폰으로 야외에 진열된
다양한 얼굴의 옹기들을 부지런히 담고 있다.
저녀석은 누굴 닮았는지
사진 찍는걸 참 좋아라 한다.
가끔 요상하게 생긴 하늘 구름
사진을 보여주며
아빠의 감탄사에 기분 좋아 하기도 하고..^^
"너도 옹기팔러갔더냐"
어느 선비가 어찌나 가세가 가난하였던지
견디다 못한 부인이 장사라도 하기를 권했다.
"남들은 옹기 장사를 해서 배불리 먹고삽디다.
그러니, 당신도 한번 해보구려."
"내가 옹기 장사를?"
부인이 패물까지 처분하여
밑천을 마련해 주어 선비는
부인이 시키는 대로 곧장 저자에 나가서
옹기 한 짐을 사서 집에 돌아왔다.
그러자,
부인이 중의 하나를 더 꺼내 주면서
"만일에 돈 대신 곡식을 주는 사람이 있으면
이 중의를 벗어 아래를 묶어 가지고 담아 오세요."하는지라,
"그러마" 하고서는 먼 마을로 나가
"옹기 사시오. 옹기 사! 옹기를 살터이면 중의를 벗고 사시오."하고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이었다.
자기로서는 옹기를 사는 사람이 곡식을 준다면
중의를 벗어서 담겠다는 뜻으로 한 말이지만,
남이 듣기에는 매우 괘씸하게 들려
한 사내가 쫓아 나오면서
"이놈아, 지금 뭐라 했어?" 하고 덤벼들자.
선비는 무서워서 옹기 짐을 내동이 치고서
어느 논둑 밑에 숨어 있는데,
마침 그 앞에 개구리 한 마리가
자기처럼 가슴을 발딱 발딱거리며,
선비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자,
그 선비는 "개굴아, 너도 옹기 팔러 갔더냐?" 하고 물으니까.
개구리가 대답 할 리 있나.
가만히 쳐다보고만 있으니까.
"이런, 못된 놈이 어째서 어른이 묻는데,
대답이 없느냐?" 하고
흙덩이로 때리니까.
개구리는 재빨리 달아나는 것이었다.
그러자,
그때서야 손바닥을 떨면서
"이놈아, 진작 깨 팔려 갔다가 쫓겨왔다 할 것이지,
괜히 나한테 맞지 않았느냐!"라고 외쳤다.
[심심할까 옮겨온 글이지만 사실 잘 이해가 안 간다]
생긴 그대로의 나뭇가지에
그저 그렇게 적당히 자리매김한
옹기 솟대들...
혹여
경북 영주시 부석면
부석사 입구 근처에 가시게 되면
'뜬돌아래 옹기나라'라는 곳을 꼭 다녀 오세요.
'뜬돌'이라고 사용된건
'부석'이란 말 자체가 한자어로
뜬돌이라는 사실은 다 아시겠죠^^
저희들은
급하게 다녀오느라
세세하게 둘러 보지도 못하고
맘에 드는 녀석을 입양하지도 못했지만
뜻이 있거나 관심있는 분들에겐 상당히 이색적인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상은 뜬돌아래 옹기나라에서
금모래은모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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