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답사기

흥법사지...

금모래은모래 2011. 8. 23. 15:06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 안창리 517-2에 위치한

흥법사지를 지난 주말에 다녀왔습니다.

 

위 사진은 흥법사지 삼층석탑(보물 제464호)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흥법사지에 대해서 다같이

공부도 해보고

인터넷으로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흥법사는 『고려사』에 기록된 내용으로 보아

신라 때 세워진 것을 알 수 있으며,

임진왜란 때 없어진 것으로 추측됩니다.

 

이곳에는 염거화상탑, 진공대사부도(보물 제365호),

진공대사탑비가 있었는데,

1931년 일본인들에 의해 강제로 반출되었다가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흥법사지 삼층석탑(보물 제464호),

진공대사 탑비 귀부 및 이수(보물 제463호)만이 남아있습니다.

 

 

 

 

 

 

진공대사 탑비 귀부 및 이수(보물 제463호)

 

 

 

 

 

 

 

아직 채 발굴되지 않은 관계로

밭둑엔 이런 유물들이 일반 돌들과 함께

굴러 다니고 있었습니다.

 

 

 

 

 

 

 

인근의 밭에서고추를 따시는 어르신께

물어봤더니

이 절터는 발굴계획이 세워져 있어

곧 작업이 들어갈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흥법사지 옆 고추밭 둑에는 버팀석 역할을 해 주는

이런 다양한 문화재들이 산재되어 있으나

버려진 일반돌과 같이 나 뒹굴고 있었습니다.

 

 

  

 

 

석축으로 자리매김한 듯한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를 보니

보는이의 맘이 너무나도 안타까웠습니다.....

 

 

 

 

 

 

사진상으로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삼층석탑은 상당히 많이 기울어져 있었습니다.

 

하루빨리 발굴 조사되어

소중한 우리의 문화유산이 잘 관리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흥법사(興法寺)의 창건, 중창, 폐사시기에 관한 사실을 알 수 있는

문헌이나 금석문(金石文)등은 아직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다만『동국여지승람』권46 원주목(原州牧) 불우조(佛宇條)에 의하면

『동국여지승람』이 편찬되었던 조선 성종 11년(1480) 경에는

사찰이 경영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흥법사의 석비에 관해서도 이제현(李齊賢)의『역옹패설( 翁稗說)』

후집(後集) 1 에서 “당나라 태종(太宗)의 글씨를

집자(集子) 모각우석(模刻于石)하였다”고 하여

고려 말까지도 석비는 건재하였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대동금석서(大東金石書)』에도 흥법사의 석비가

진공대사비(眞空大師碑)임을 밝히고 있으며

고려 태조 23년(940)에 건립하였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어

고려 초인 940년경에도 흥법사가 경영되고 있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1779년(정조3)에 편찬된『범우고(梵宇攷)』와

영조대(1724~1776)에 신경준이 지은 것으로 알려진

『가람고(伽藍考)』의 기록에서는

진공대사의 탑비가 두 토막이 나 있음과

흥법사도 폐사되었음을 밝혀 임진왜란을 전후한 시기에

폐사되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흥법사지는 원주시 지정면 안창리의 해발 403m인

영봉산(靈鳳山)의 지맥이 흘러내린

작은 구릉으로 둘러싸인 곳에 자리 잡고 있으며

절터는 동저서고(東低西高) 남저북고(南低北高)의 지형으로

사지 내외로 몇 채의 민가들이 들어 서 있습니다.

 

 

사지 전면에는 높이 2.4~3.6m의 돌로 쌓은 축대가 있으며

축대 중앙에는 12m 정도의 돌출부가 있습니다.

1929 년 일본인 오가와 게이기찌(小川敬吉)의

『흥법사지현황조사복명서(興法寺址現況調査復命書)』에

흥법사지 가람의 중심축선상의 탑 뒤쪽으로 금당지(金堂址)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지금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탑에서 서쪽으로 52m 정도 떨어진 곳에

높이 2.1~3m, 길이 60m 정도의 강당지로 추정되는

건물이 위치했던 것으로 보이는

축대가 있으며 북단은 서쪽으로 꺾여 있고

남단은 경작지로 변형되어 알 수가 없습니다.

 

 

 

 

 

 

 

흥법사는 큰 규모의 사찰은 아닌 것 같으나

진공대사가 왕사(王師)로 활약하던 고려 초에는

고려왕실의 후원에 힘입어 위상이 높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진공대사가 봉림산파에 속했던 사실로 보아

선종계 사찰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흥법사지에는 귀부(龜趺)와 이수( 首)만 남아 있는

보물 제463호인 진공대사탑비와 보물 제464호인 삼층석탑이 있습니다.

진공대사탑비는 삼층석탑의 서북쪽에 보존되어 있으며

당대를 대표하는 조각입니다.

 

삼층석탑은 2층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부를 형성하고

정상에 상륜을 장식하는 전형적인 삼층석탑으로

전체적으로 보아 석탑의 규모가 작으며

기단부와 탑신부의 비례 또한 균형을 잃고 있습니다.

이러한 형태로 보아 삼층석탑은

고려시대 중엽에 이르러 세워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시간나는 틈틈히 전국의 문화유적지를 돌고 있지만

유난히 사철터 탐방이 많더군요^^

사찰터에 가면 아무래도 문화재가 많거던요. 

 

2008년, 2009년과 2010년에 다녀왔던

여주의 고달사지와 제천 월악산의 미륵리 사지,

충남 부여의 정림사지

그리고 전북 익산의 미륵사지가 기억에 남습니다.

특히 익산의 미륵사지는

동양 최대를 자랑하는 아주 큰 사찰터더군요.

 

제가 다녀온 강원도 원주의 사찰터로는

거돈사지법천사지가  기억에 남구요.

 

 

이런 맥락에서 바라보니

원주의 흥법사지도 하루빨리 발굴되어

안정적으로 잘 관리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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