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답사기

탈해왕릉..

금모래은모래 2011. 8. 12. 16:46

 

 

포항과 경주를 지나가는

7번국도 옆엔 사적 제174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는

신라 제4대왕인 탈해왕의 릉이 자리하고 있다.

 

이번 기행에서

경주의 포석정과 탈해왕릉 이 두곳을 둘러보고

다시금 이렇게 돌아와서 공부할 수 있어 기분이 참 새롭다.

 

 

  

탈해왕

BC19년~AD80년, 신라 제4대 왕,

재위 57년~80년,

성은 석(昔), 휘는 탈해.

신라 첫번째 석씨 왕.

 

 

고즈넉한 왕릉 앞의 솔밭은

여느 왕릉과 별반 다를거 없이

오랜 세월동안 참 잘 관리 보존되고 있었다^^

 

 

 

 

 

탈해왕에 얽힌 설화는 몇가지가 전해져 오고있다.

어떤 내용이 더 신빙성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곳 저곳을 찾아보고 다음과 같이 소개해 보고자 한다.

  

 

 

용성국의 왕이 적녀국의 왕녀를 아내로 맞아 임신 7년 만에 알을 낳았다.

왕의 명령으로 알을 궤짝에 담아 바다에 떠내 보냈는데

BC 19년(박혁거세 39) 아진포에서 한 노파가 발견하여

알에서 나온 아이를 길렀다.

석탈해는 자라서 AD 8년(남해왕 5) 왕의 사위가 되었다.

그후 AD 10년에 대보(大輔)에 올라 왕이 맡긴 국정을 총괄하였다.

남해왕이 왕위를 물려받으라 했으나 처남에게 양보하여,

AD 24년 유리왕이 왕위에 올랐다.

AD 57년 유리왕의 유언에 따라 석탈해는 62세 때 왕위에 올랐다.

즉위 이듬해인 AD 58년 호공을 대보(大輔)로 삼았는데,

호공은 탈해에게 집을 빼앗겼던 사람이다.

 

 

 

 

탈해왕의 릉을 찾는이는 별로 없었다.

여름날의 신혼부부인 양

커플 옷을 입은 남녀 한쌍이 보일 뿐.....

 

  

 

 

 

 

왕릉 우측편에

이렇게 가만히 누워있는 소나무 한그루가 있었다.

태풍 피해를 입어 쓰러진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그건 아니었다.

왕의 릉을 지키는 수호신 같은 느낌이 들었다.

 

왕의 릉을 향해 절을 하 듯 쓰러져 있는

고목의 누워있는 소나무...

청도의 운문사 누워있는 소나무가 생각난다^^

 

 

 

 

 

 

탈해왕은 몸소 시조묘에 제사를 지냈고,

즉위 초에 외교에 힘을 기울여 AD 59년 왜와 수교하였으며,

AD 61년에는 마한의 장수 맹소가 복암성을 바치고 항복했다.

그러나 탈해왕 대에 신라와 백제는 계속 전시 상태였는데,

64년에는 백제가 와산성과 구양성을 공격하여 기병 2천명으로 막아내었다.

65년, 시림(始林)에서 김알지를 얻었고,

시림을 계림으로 개칭한 뒤 계림을 국호로 삼았다

67년에는 박씨 족단의 사람들을 주, 군으로 나눈 자방의 자리에

각각 주주, 군주로 앉혀 다스리게 했다.

70년에 다시금 백제의 침공이 있었고,

73년에는 왜인이 목출도를 침범해 우오를 보내 막았으나

이기지 못하고 우오는 전사하였다.

79년에는 장군 거도를 파견하여

현재의 울산 울주구, 부산 동래구에 해당하는

우시산국과 거칠산국을 병합하였다.

80년 가을 음력 8월에 죽어 성 북쪽의 양정구에 장사지냈다.

 

 

 

 

 

 

왕이 세상을 떠나자 삼국사기에는

 ‘성북의 양정 언덕에 장사하였다’고 하였고,

삼국유사에는 ‘수장하였다가 뼈로 소상을 만들어 동악에 모셨는데

지금의 동악 대신(大神)이다, 라고 하였다.

 

그러나 삼국사기의 성북이라고 한 점이 현재의 위치와 부합된다.

이 무덤은 높이 4.5m, 지름이 14.3m 크기로

둥글게 흙을 쌓아 올린 봉토무덤이다.

주변에 아무런 시설을 하지 않았으며,

겉으로 보아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으로 추측된다.

 

 

 

 

 

 

 

그렇게 웅장하지도 않다.

어쩜 단아한 왕릉이라고 해야되나...

왕릉이라고 하기엔 조금 작아보이는 탈해왕의 릉.

  

 

 

 

 

 

 

여름 햇살은

탈해왕의 릉 한켠을 비껴나

소나무 가지에 걸터앉 듯 그 빛을 맘껏 토해내고 있었다.

 

 

이번 경주 기행은

사실상 목적 기행이 아닌

경유기행이다 보니 시간적인 여유가 별로 없어

여러곳의 자세한 사료 공부의 시간은 되지 못했다.

 

하지만

나름의 시간을 쪼개어

잠시나마 가슴으로 느끼고 담아올 수 있는

참 행복한 시간이었음을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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