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답사기

칠장사 가는 길...

금모래은모래 2011. 6. 20. 15:52

 

 

 

 

 

지난 주말에 경기도 안성에 위치한 고찰이며

수많은 전설이 숨어있는 '칠장사'를 다녀왔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칠장사에 대해서

공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칠장사는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24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경기도 안성 칠현산(七賢山)에 있는 칠장사는

636년(선덕여왕 5)에 자장율사가 창건했고,

고려초 혜소(慧炤:927~1054)가 현재 비가 있는 자리에

홍제관(弘濟館)을 짓고 수도를 할 때

7명의 악인을 교화제도(敎化濟度)하여 득도의 경지에 이르게 했기 때문에

산이름을 칠현산(七賢山)이라 했다고 한다.

 

1014년(현종 5) 왕명으로 절을 크게 중창한 뒤에도

여러 차례의 중수와 중건이 있었다.

1674년(현종 15)에는 어떤 세도가가 산을 빼앗아

승려들이 흩어지는 비운을 겪었으나

초견(楚堅)이 절을 다시 찾아 중수했으며,

현존 당우로는 대웅전·원통전·영각·명부전·천왕문·요사채 등이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인목대비의 친필 족자(경기도 유형문화재 제34호),

대웅전(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14호),

천왕문 안에 있는 소조사천왕상(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15호),

혜소국사비(慧炤國師碑:보물 제488호), 삼불회괘불탱(보물 제1256호)이 있다.

이밖에 절 입구에 고려시대의 철제 당간지주와 부도 14기 등이 있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인조 원년(1623)에 인목대비가

아버지 김제남과 아들 영창대군의 명복을 비는 절로 삼아서

크게 된 곳이기도 하다.

이후 세도가들이 이곳을 장지(葬地)로 쓰기 위해 불태운 것을

초견대사가 다시 세웠으나

숙종 20년(1694) 세도가들이 또 다시 절을 불태웠다.

숙종30년(1704)에 대법당과 대청루를 고쳐 짓고

영조 원년(1725)에 선지대사가 원통전을 세웠다.


 

 

 

 

 

참 특이하게도

대웅전 앞에 이렇게 생긴 털복숭이 녀석이

자리를 떡하니 지키고 있었다...멍멍멍~~~

 

 

 

 

 

 

칠장사는 궁예의 전설이 깃든 곳이다.

 

궁예의 어머니가 머리를 깎고 이 절에 들어와 수양을 했고,

대의를 품은 아들은 수시로 어머니를 찾아 절에 들르곤 했다.

궁예는 어릴 적 이 절에서 궁술을 연마했다고 한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조선시대 의적 임꺽정의 스승 갓바치도 이곳에서 도를 닦았다고

벽초 홍명희가 소설에 썼다.

요사채에는 연전에 이곳에서 촬영을 한

궁예와 임꺽정 출연진들 사진도 걸려 있다.

 

그런 전설을 무시하고라도 칠장사는 방문할 가치가 있다.

 

절 입구 대로변에 조용히 서 있는 부도밭을 지나 아침 안개 낀 절에 들어서면,

빛 바랜 목재 그대로 세월을 견디고 있는 대웅전이

너른 마당 뒤로 모습을 드러낸다.

바로 고즈넉함이요 고요함이 칠장사의 큰 덕목이라 할 수 있다.

화장하지 않은 '쌩얼'의 산사라고나 할까.

 

 

 

 

 

무슨 고민을 하시는건지

두분의 스님이 대웅전 앞 연등을 바라보며~~

 

 

 

 

경기도 안성 칠현산 칠장사의 일주문,,,

 

 

 

 

다녀간이들의 고귀한 정성이 깃든

소원 돌탑들...

 

 

 

 

 

대웅전 오른편에

본디 이 절의 것이 아닌 석불입상이 있다.

인근의 죽산리 봉업사지에 있던 석불인데 죽산 중고등학교 교정에서

홀대받다 칠장사로 오게 된 부처라는...

 

보물 제988호로 지정된 이 부처는

석굴암 본존불과 비슷한 8세기에 조각된,

그러니까 통일신라시대 양식이다.

 

눈, 코가 몹시 마모되었지만

뛰어난 석공의 솜씨라는 것을 부드럽게 흘러내린 옷자락과

몸의 곡선미에서 잘 알 수 있었다.

두광 안에 3기의 화불과 몸 전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신광의 화염문도 참 아름답게 표현 된 듯 하다.

 

 

 

 

 

대웅전 옆의 조금은 보잘것 없어 보이는 돌탑^^

 

 

소설 『임꺽정』에 백정이 중이 되어 생불처럼 존경받던

꺽정이의 스승 병해대사가 칠장사에서 입적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병해대사는 고리백정 '갖바치'로,

그리고 백정 중으로 일생을 천대 속에 보냈지만

성불하여 소도바(탑)에 한줌 재로 남을 수 있었던 특별한 사람이었고 한다.

임꺽정이 안성 감옥에 갇힌 막봉이를 빼내려 모의하던 중,

스승이 돌아가신 것을 알고

스승을 목불상으로 만들어 모시는 장면이다.

 

그 목불상 앞에서 일곱 의형제가 결의를 맺으니,

이 대목에서 혜소국사와 일곱 도적 얘기가 겹쳐지기도 한다.


 

 

 

 

칠현산 등산로에서 바라본 칠장사의 뒷 모습...

 

 

 

 

아름아름 봄 햇살의 정겨움을 찾아

칠현산을 오르내리는 등산객들이 눈에 뛰었다.

  

 

 

 

 

칠장사는 큰 절은 아니지만

많은 이야기꺼리와 전설을 품고 있다.

 

입장료도 받지 않는

조금은 절 냄새가 덜 나는 오래된 고찰이다.

 

칠현산 등산 후 내려오는 길에

누각에 앉아 시원한 바람에 땀을 식히며,

옛이야기와 더불어 잠시 쉬어가도 좋은 그런 고찰이다.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가던 젊은 박문수,

날이 저물어 이곳 나한전에서 하룻밤을 잤겄다.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 시를 한 줄 불러주고 사라지니,

그 꿈 한번 요상허다.

 

그런데 과거시험장에 도착해서 글제가 펼쳐지니,

어허 저거 좀 보소,

어젯밤 꿈 속의 노인이 일러준 바로 그 싯구가 아니던가.

하여 어렵지 않게 장원급제하여 암행어사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칠장사와 관련하여 전해지고 있다.

 

 

 

 

 

어떤 장승...

 

칠장사 입구 마을의 어떤 장승..

장승의 나이가 많아 이젠 생의 마감을 준비 하는 듯^^

 

 

 

 

 

 

칠장사 입구의 묵언마을의 입구 표지석인 장승....

 

하나의 장승에 남녀를 같이 조각하니

또다른 멋스러움이 느껴진다^^

 

묵언마을은 형성된 촌락이 아니고

몇몇 스님들이 묵언으로 도량을 닦는 요사채 인 듯 했다. 

 

 

 

 

 

 

묵언마을의 너와집과

항아리와 다듬이 돌로 담을 만든 이색적인 외부 풍경^^ 

 

 

 

 

 

깨진 항아리에서 무슨 생각이 들까?

 

세월?

삶?

버려진 항아리 조각? 

아니면 아무것도?

 

하나의 소재로 그냥 앵글에 담아봤다...

 

 

 

 

 

 

묵언마을에서 걸어나오시는 어떤 젊은 스님...

 

참 곱게도 생기셔서 처음엔 여자 비구니인줄 착각을 했다.ㅎㅎㅎ

 

눈이 마주치자 차분하게 두손모아 인사를 하시더니

시장에 장보러 가시는지 차 시동을 부릉하고 걸고

어디론가 휭하니 출발했다. 

 

 

 

 

 

 

칠장사 입구의 시인들이 많이 찾는다는 어떤 식당 벽의 글귀다...

 

'어울림'이라는 보리밥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인데

늦은 배고픔에 멋지게 한끼 민생고를 해결했다.

 

 

 

이번 경기도 안성 칠현산 칠장사 방문은

사전 예정에 없던 코스였지만,

워낙에 병적으로 문화유산 답사를 좋아라 하는 까닭에

예전에 어느 일간지 신문에

 '위크엔드' 산행코스로 소개되었던 곳이기도 하여

한번쯤은 꼭 다녀오고 싶었던 곳이었다.

 

칠장사...

아주 크고 유명한 사찰도 아니다.

하지만 나름의 산사로서의 운치를 품고 있으며,

수많은 전설과 고요함이 독특하게 공유하는 이색적인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였다는 사실...

 

봄 햇살의 정겨운 손짓이 잦은

이 아름다운 봄날에 활짝 문을 열고

한번쯤은 우리네 산야로 나가 보심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