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는다.
그리고 그 길 한가운데
내가 서 있고 어느 순간 나는
그 길이 되었다.
원주역 앞 학성동 달동네인
일명 40계단 마을의 벽화 골목길을
무심코 거닐었다.
휴가나온 둘째랑 원주역에서 약속한
시간보다 조금 이른 시간이라
둘러보게 된 것이다.
사람사는 향기가 묻어나는
삶의 끈적끈적한 흔적들은 오히려
정감어린 우리네 정서로 다가오는 듯 했다.
좁고 가파른 계단의 그 골목길을
그냥 그렇게 걸어 보았다.
골목길
파란 벽면에는
만원권 지폐가 펄럭이고 있다.
세종대왕님께서...
구석진 곳에는
돈다발이 수북히 쌓여있고...
벽속에서 돈 냄새가 난다.
순간 고개를 돌리면
저렇게 높은 빌딩숲들이다.
사이 사이로 비집고 들어온 아파트와
허물어져 가는 낡은 집들의 벽에는
다양한 이야기의 우리네 삶을
노래한 벽화가 즐비하다.
최근 마감한 드라마
'시그널'의 삽입곡이 생각났다.
김윤아의 '길'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아
이 길이 옳은지 다른 길로 가야 할지
난 저길 저 끝에 다 다르면 멈추겠지
끝이라며
가로막힌 미로 앞에 서 있어
내 길을 물어도 대답 없는 메아리
어제와 똑같은 이 길에 머물지 몰라
저 거미줄 끝에 꼭 매달린 것처럼
세상 어딘가 저 길 가장 구석에
갈 길을 잃은 나를 찾아야만 해
저 해를 삼킨 어둠이 오기 전에
긴 벽에 갇힌 나의 길을
찾아야만 하겠지
가르쳐줘 내 가려진 두려움
이 길이 끝나면 다른 길이 있는지
두 발에 뒤엉킨 이 매듭 끝을 풀기엔
내 무뎌진 손이 더 아프게 조여와
세상 어딘가 저 길 가장 구석에
갈 길을 잃은 나를 찾아야만 해
저 해를 삼킨 어둠이 오기 전에
긴 벽에 갇힌 나의 길을
찾아야만 하겠지
좁아터진 그 골목길에서
이렇게 용감하게 담을 타는 녀석을 만났다.
어느 SNS에서는
이 한장의 사진을 보고선
"저 아이는 지금 어느 교도소에 가 있을까요?"
라고 되려 묻는이도 있었다... ㅋㅋㅋ
그래도 행여나 놓칠새라
검정 고무신은 손에 꼭 쥐고 있다.
이곳이 바로
그 이름도 유명한 40계단 골목이다.
한낮인데도 너무나도 조용한 골목길이다.
분위기가 조금 이상하다 싶었는데
나중에 알게 되었다.
벽화들의 소재가 왠지 모르게
조금은 슬픈 느낌이다.
벽화속 울퉁불퉁한 항아리는
못생겼지만 투박스러운 멋이며
노란 고냉이는 막 째려보고 있었다.
위태 위태한 건축물들과
아스라한 벽화들의 관계는
과연 무엇일까?
낮은 담벼락에는
가시 철조망보다도
더 무서운 병조각들이
시퍼런 날을 세우고 있다.
섬칫하다.
바람결에 휘날리는 빨래들과
노랭이 병아리들의 이상한 조화가
여행자로 하여금 자세히 들여다 보게 한다.
제목을 '삼라만상'이라고 붙이고 싶었다.
이곳 골목길은
정말 비좁고 헷갈린다.
자칫 잘못 들어가면 미로처럼
돌고 또 돌아 제자리로 돌아오기 일쑤다.
나 같이 덩치가 큰 사람들은
둘이 지나가기가 무리다.
딱 1인용 골목길이다.
저 길의 끝에
또 다른 길이 이어지고 있다.
하늘에서 바라보면
이곳 골목길이 이해되려나?
지금도 운영되고 있는 여인숙인지는 모르겠다.
그동안 수많은 전설들이 스쳐지났을...
벽화에서는 봄빛이 그윽하기만 하다.
꿈인지 생시인지
이도령과 춘향이의 꿈은
커다란 벽화로 승화된듯 하다.
고층아파트와 어우러진
어색한 조화가 오히려 자연스럽다.
같은 하늘 아래서
똑 같은 공기로 숨을 쉬는데...
아슬 아슬해 보이지만
누군가에겐 소중한 안식처가 아닌가?
그 길을 또 걷고 걸어본다.
앗!
미로같은 골목길을 돌고 돌다보니
빨간창문의 집들이 나왔다.
아직도 영업이 진행되고 있는 듯...
다 철거되고 없는줄 알았는데...
그래서 골목길 입구에 청소년 출입금지라는
문구가 얼핏 보였었구나.
어딜가나 비슷한 우리네 이야기
그리고 삶의 끈적한 모습들...
크게 다르지 않은 그 공간에서
아웅다웅 각자의 삶을 노래하며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이다.
겉으로 보이는 모양새는 달라도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렇게 치열하게
자신의 삶을 불태우고 있었다.
원주역에 도착하는 아들을 태우러 갔다가
잠시 짬시간에 둘러본 학성동 40계단 벽화골목길...
그곳에도 변함없는 우리네 삶의
귀한 흔적들과 아날로그의 정서가
곳곳에 묻어 있어 좋았다.
담벼락에 그려진 벽화속에는
대변하듯 전해지는 그들의 이야기가
꿈틀대고 있었으며 인적없는 골목길의
소소한 감동들은 방문객의 마음마저
숙연케 하기에 충분했다.
원주역앞 학성동
40계단 벽화골목길에는
그분들의 치열한 삶의 이야기가
더불어 묻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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