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답사기

[하남여행] 광주향교 늙은 은행나무의 가을빛 속삭임...

금모래은모래 2015. 11. 20. 06:00

 

 

수령 500년의

노랭이 은행나무 다섯그루가

유난히 아름다운 경기도 하남시에 위치한

광주향교의 늦가을을 다녀왔습니다.

 

이성산성을 오르다가

우연하게 발견한 이곳 광주향교의

노랭이 은행나무 다섯그루를 도저히

그냥 지나치질 못했습니다.

 

인터넷상에서 이곳 광주향교의

노랭이 노거수 은행나무에 대한 다른

정보를 얻으려 찾아보았더니 가을날의 자료는

거의 전무한 실정이더군요.

 

하루가 다르게 깊어가는

가을날의 변화무쌍함에 아마도

몇일 지나진 않았지만 이번 비로 인해

거의 모든 은행잎들이 바닥으로 떨어진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사진 몇장으로 경기도 하남시

광주향교를 소개합니다.

 

 

 

광주는 '넓은 고을'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조선시대 한강 남쪽의 넓은 영토를 관할하는 지역이었다.

 

조선 성종 연간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고려 태조 23년(940)에 이 일대의 고을을 '광주'라고 명명하였고

성종 2년(983)에 '전국 열두고을에 지방통치의 거점으로

'12목'을 설치하였는데 그 중에 하나가

광주이다.' 라는 기록이 남아있다.

 

조선시대까지만 하더라도

'동은 여주 경계까지 75리, 남은 이천부 경계까지 74리,

서는 안산군 경계까지 76리, 북은 양주 경계까지 10리'에 이르는

넓은 영토를 관할하였던 지역이 광주였다.

 

 

 

주차장에서 만난 500살 은행나무의 하단부...

 

 

 

향교의 수호목이라고 소개되어 있네요.

 

 

 

광주향교 정문입니다.

 

현재는 하남시의 행정구역 안에 속해있지만

남한산성이 건립되어 광주의 치소가 옮겨가기 전까지

광주목의 읍치가 설치되어 있던 광주의 중심지였다.

 

 

읍치의 흔적은 현재 남아있지 않지만

그를 뒷받침하는 유적이 바로 광주향교라고 할 수 있다

보통 조선시대에는 하나의 읍치에 하나의 향교를 설치한다는

원칙으로 전국에 향교가 건립되었다고 한다.

 


광주향교는 정확한 창건시기는 알 수 없으나

숙종 29년(1703)에 고읍 서쪽에 있던 것을 현재의 위치로 옮겨온 것이라 한다.

평소에는 일반인들에게도 문을 개방해 두는 것으로 보이는데

주말에는 문이 잠겨있어 안으로 들어가 살피질 못하고

담장밖에서 겨우 향교안을 엿보듯 하였다.

 

 

 

향교 앞쪽에 위치한 은행나무 한그루...

 

 

 

광주향교의 배치는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향교배치 형식인 '전학후묘(前學後廟)' 형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바깥문인 외삼문을 통과해서 들어가면

그 앞에 강당인 명륜당이 놓여있고 그 양 옆으로

기숙사 건물인 동재와 서재가 자리하고 있다.

 

 

 

이곳 광주향교는

그렇게 잘 알려진 곳은

아닌가 보다.

 

사전에 답사 자료를 접하질 못해

도로변에서 보고 아주 우연히 방문했다는...

 

 

 

향교의 정문쪽에서 좌측으로 돌아가 봅니다.

서원도 그러하고 향교도 그러하지만 으레 이러한 교육시설 곁에는

해묵은 오래된 은행나무들이 자리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공자가 학생들을 가르칠 때

은행나무 아래에서 가르치기를 좋아했다 하여

그 이후로 은행나무 아래를 의미하는 '행단(杏壇)'은

'학문을 닦는 곳'으로 상징되었다고 한다.

 

그러한 연유로 옛 교육시설에는 은행나무를 심는 경우가 많았고

전국의 향교와 서원에 은행나무가 자리하게 된 것이다.

 

 

 

올가을에 울긋불긋한 단풍은

그래도 제법 만난것 같은데 이렇게

할아버지 할머니 은행나무는 처음인것 같다.

 

 

 

저만치 뒤로 보이는 한그루는

벌써 잎이 다 떨어지고 거의 없었다.

 

 

 

향교와 늙은 은행나무...

 

정확하게 어떤 나무가 할아버지인지

어떤 나무가 할머니 나무인지는 모르겠다.

 

바닥을 뒹구는 은행알이

이곳 저곳 뒤섞여 있기 때문에...

 

 

 

담장밖에서 슬그머니 바라보는

향교도 이채롭기만 하다.

 

 

 

발아래 풍광은 또 요런 모양이구요^^

 

 

 

향교와 은행나무의 가을을 노래하는

방문객들이 더러 보여서 덜 쓸쓸했습니다.

 

 

 

나무가지에 남아있는 은행잎이나

바닥을 뒹구는 은행잎이나 심한 냄새를 풍기는

은행알마저도 아름다운 가을빛이더군요.

 

 

 

한줌의 은행잎을 휙 던져 보았습니다.

벌러덩 바닥에 눕고 싶었지만 은행알이 너무 많네요^^

 

 

 

하얀 겨울빛과

초록의 봄빛을 찾아보려

자료를 찾아 보았더니 신록의

여름 사진만 많이 보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광주향교의

노란 가을사진은 귀한것 같습니다. 

 

 

 

향교담장 너머로

아스라이 묻어나는 가을 이야기가

오래도록 기억될것 같습니다.

 

 

 

고개를 들고 나무위로 쳐다 보았습니다.

오랜 세월의 흔적들이지만 아직도 건재한

그 모습이 늠름하기까지 합니다.

 

 

 

분명 몇일 사이에

다 떠나고 없을것 같은 불길한 예감...

 

 

 

은행나무 끝가지에

여린 손아귀로 겨우 버티면서

대롱거렸는데 말입니다.

 

 

 

수령 400~500년의

늙은 은행나무 다섯그루...

 

지나는 발길을 붙잡기에

충분한 매력 덩어리였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랫동안

저곳에 가만히 머물지 모르겠지만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 건강한

삶을 기원해 보았습니다.

 

 

 

 

예정된 경로를 이탈하였습니다.

물론 목적지인 이성산성을 다녀왔지만

이곳 하남시에 위치한 광주향교 방문계획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거던요.

 

노랭이들의 반란을 닮은

하남시 광주향교의 노란 가을은

제겐 또 하나의 전설같은 가을빛 기행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가을은 저만치 떠나가고 있지만

아직은 뭉클하게 가슴속에 남아 있답니다.

 

경기도 하남시에 위치한

광주향교와 노거수 은행나무의

가을빛 속삭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