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이천시와 광주시의
경계를 이루는 곤지암을 아시는지요.
행정구역상으로는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읍 곤지암리지만
몇해전까지만 해도 사실 곤지암읍이 아니고
실촌읍 곤지암리였답니다.
그래서 집에서 가깝기도 하고
늘 지나쳐 다니지만 곤지암이라는 지명 자체가
조금 신기하기도 하고 무슨 의미일까 의아해
최근에 이곳 곤지암을 지나는 길에
잠시 둘러보고 왔습니다.
2011년도에 실촌읍에서 곤지암읍으로
명칭도 변경되었더군요.
곤지암?
곤지바위였습니다.
어떤 아련한 전설이 서려 있길래
지역의 지명까지도 곤지암이 되었는지
그 곤지바위를 찾았습니다.
곤지암리 소재지에
작지만 이렇게 곤지바위라고
안내간판이 있답니다.
백과사전에서
곤지암의 유래에 대해서 찾아보았습니다.
조선 선조 때의 명장인 신립 장군에 얽힌 전설이 있는 바위이다.
1985년 6월 28일 경기도의 문화재자료 제63호로 지정되었다
곤지암의 바위에는 원통하게 죽은
조선 선조 대의 명장 신립 장군에 얽힌 전설이 있다.
신립은 왜군의 침략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 왕으로부터
훈련도 안된 병사 몇백 명을 이끌고 왜군을 물리치고 오라는
명을 받고 김여물과 함께 싸움터로 향했다.
그러나 그는 달전에서 고니시가 지휘하는
수만 명의 왜군과 싸우다 참패를 당하자 강물에 빠져 죽었다.
몇몇 살아 남은 병사들이 물에서 신립 장군을 건졌을 때
얼마나 원통하고 분했던지 두 눈을 부릅뜨고 당장이라도
호령할 것 같은 기세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병사들이 장군의 시체를 광주에 옮겨
장사을 지냈는데 그 후로 이상한 일이 발생하였다.
묘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고양이처럼
생긴 바위가 하나 있었는데,
누구든 이 앞을 말을 타고 지나가려고 하면
말발굽이 땅에 붙어 떨어지지 않으므로
말에서 내려 걸어가야 했던 것이다.
그러던 중 어떤 장군이 이 앞을 지나가다가
신립 장군의 묘를 찾아가, 왜 오가는 행인을 괴롭히느냐고 핀잔을 주었다.
그러자 갑자기 뇌성과 함께 벼락이 쳐 바위를 내리쳐서
바위의 윗부분이 땅에 떨어지고 두 쪽으로 갈라지면서
그 옆에 큰 연못이 생겼다.
그 후로는 괴이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고,
사람들은 이 바위를 '곤지암'이라 불렀다.
원래는 이 바위 주변에는 연못이 있어서 소하천과
연결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복개되어 학교와 주택가로 변하였다.
곤지암은 화강암으로 된 큰 바위와
작은 바위 두 개가 조금 떨어져 있는데,
큰 바위는 높이 3.6m에 폭이 5.9m이고,
작은 바위는 높이 2m에 폭 4m크기이다.
바위 위쪽에 광주시 보호수로 지정된
수령 약 400년된 향나무가 자리잡고 있어 서로 잘 어울린다.
2011. 6. 21.
실촌읍에서 곤지암읍으로 명칭이 변경된
곤지암읍 곤지암리 소재지의 모습...
곤지바위는 소재지안의
도로변에 위치하여 쉬이 눈에 들어온다.
저만치 보이는 바위 덩어리와
향나무 한그루가 바로 그 곤지암의 유래인
곤지바위인 것이다.
바위도 바위지만
커다란 바위속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는
400년 수령의 향나무가 완전 신기하더군요.
경기도 문화재 자료로 등록이 되어 있더군요.
곤지바위를
한바퀴 둘러보았습니다.
주변엔 다양한 상가들이 들어와 있지만
그래도 이곳 곤지바위는 잘 보존되고 있는듯 하네요.
그냥 바위와 나무라고
두들껴 깨고선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지 않은게 어쩜 다행스럽구요.
울타리도 쳐 있어 아무나
쉬이 넘어갈 수는 없었습니다.
이 곤지바위에는
특이하게도 돌나물들이
이렇게 더불어 살고 있었습니다.
보면 볼수록 신기한게 향나무였습니다.
거의 빈틈이 없는것 같은데도 바위 틈새로
뿌리를 내린걸 보니 말입니다.
그래도 자세히 보니
향나무는 제법 튼실하게
잘 자라고 있는듯 했습니다.
수령이 무려 400년이라니...
얼핏 보기엔 화강암이 아닌듯 했습니다.
곤지암 소재지의
수많은 상가에 둘러 쌓여있는 곤지바위...
바로 이 바위가
이곳 지명 곤지암의 유래였답니다.
많은 상가들이
이곳 지명과 관련있는
간판을 걸고 있었습니다.
대충은 알고 있었지만
곤지암의 실제 지명과 관련된
곤지바위를 이렇게 둘러 보았습니다.
경기도 광주시 곤지암의
실제 지명의 발원지이기도 하고
무척 애절하고 가슴아픈 전설같은 이야기가
지금까지도 전해져 내려오는 곤지암..
그곳에서는
조선의 명장 신립 장군의
원통하고 분했던 넋이 지금도
사방을 맴도는듯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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