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답사기

청음 김상헌 선생의 지조가 묻어나는 청원루와 소산마을의 전설...

금모래은모래 2013. 12. 6. 06:00

 

 

 

오늘은 안동 하회마을 입구의

소산마을에 대해서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유난히 고택과 정자 등의

오래된 건축물이 많이 남아 있는 안동은

도산서원과 하회마을 등의 다양한 문화재 말고도

문득 지나칠 수 있는 곳이 많답니다.

 

그 가운데 오늘 소개해 드릴 소산마을은

가노라 삼각산의 김상헌 선생이 머물렀던 동네이며

  고택과 정자 등의 운치가 남다른 곳이기에

사진 몇장으로 둘러보겠습니다. 

 

 

 

일단 소산마을 입구 도로에서

안동을 상징하는 젊은 선비를 만납니다^^

언제나 저렇게 생글생글 반겨줄 듯..

 

 

 

 

이 소산마을이라는 표지판 하나에

병산서원으로 가다가 멈췄다는 사실 ㅋㅋㅋ

비록 병산서원을 못 보고 돌아 왔지만

전혀 후회하지 않습니다.

 

 

 

 

소산마을 입구에서 만난

지조의 상징 청음 김상헌 선생의 시비...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보자 한강수야

고국산천을 떠나고자 하랴마는

시절이 하 수상하니 올동말동 하여라"

 

 

 

 

하얀 설원의 마을앞 언덕엔

노거수 소나무숲 사이로 정자가 보인다.

궁금해서 한번 둘러보기로 했다.

 

 

 

 

가까이 다가가니

제법 운치가 돋보이는 정자다.

 

 

 

 

 

정자의 구조가 조금 특이하다.

여느 정자에서 볼 수 있는 마루끝 난간이 보이질 않는다.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삼귀정...

 

삼귀정이란 이름은

정자앞에 거북의 모양을 한 세개의

바위가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뜻글자인 한자어로 삼구정이라고도 하지만

거북과 관련된 명칭이니 삼귀정이

바른 표현이 아닌가 싶다.

 

 

 

 

정자의 속을 들여다 보았더니

목재를 이용한 화려한 기술이 돋보인다.

우리 조상들의 지혜로운 면을 엿볼 수 있었다. 

 

 

 

 

 

잔설 가득한 마을길을 거닐어 보자...

 

 

 

 

마을안엔 이런 효자각도 있더이다...

 

 

 

 

소산마을의 지명 유래를 찾아보자...

 

소산의 옛 지명은

영가지에 금산촌(金山村)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우리말로는 쇠미마로 부른다.

금산(金山)이 쇠금자의 쇠자와

뫼산의 뫼를 뜻하여 쇠미마로 부른 듯하다.

 

이 금산촌이 소산으로 이름이 바뀐데에는

청나라에 끌려갔다가 풀려 나온 후 소산에 은거하면서

청을 멀리한다는 뜻을 담은 청원루를 중건한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에 의해서이다.

 

선생은 김씨의 집성촌인 이 마을의 이름을 금산촌이라하는 것은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느낌이 드는 이름이라

온당치 못하다"고 해서 개명했다고 전한다.

 

선생은 "검소하고 신의를 중하게 여기는

씨족이 사는 마을이라는 이름이 좋겠다"고 하여

소산으로 고쳐지었다고 전한다.

 

또 다른 이야기는 마을을 감싸고 있는

소요산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고도 하고,

소요산의 지형이 소가 누워 있는 형국을 하고 있다고 해서

소산이라 불렀다고도 한다.

 

 

 

 

청음 김상헌 선생이

말년에 기거했다는 청원루에 도착했다...

 

 

 

 

대문은 열려 있었다..

인적없는 청원루의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청원루...

 

청나라를 멀리 하자는 뜻의

김상헌 선생의 지조와 기개가 담긴 문구라는데.. 

 

참 멋진 구조의 건축물이다.

고택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제가 봐도

매우 독특하고 멋있다.

 

 

 

 

이곳에 누군가 기거하고 있지는 않지만

청원루 처마엔 나물이 마르고 있다.

 

 

 

 

청원루의 내부를 둘러보자... 

 

 

 

 

청원루에 올라 바라본 입구 대문쪽...

 

 

 

 

그럼 지조의 상징적인 인물

청음 김상헌 선생에 대해서 찾아 보았다.

 

인조반정에 참여하지 않은 청서파(淸西派)의 영수이며,

병자호란 때는 끝까지 주전론(主戰論)을 주장했다.

본관은 안동. 자는 숙도(叔度), 호는 청음(淸陰)

아버지는 돈녕부도정 극효(克孝)이고, 형이 우의정 상용(尙容)이다. 

 

1596년(선조 29) 정시문과에 급제하여 부수찬·좌랑·부교리를 지내고,

1608년(광해군 즉위) 문과중시에 급제하여

사가독서(賜暇讀書)한 뒤, 교리·응교·직제학을 거쳐 동부승지가 되었다.

 

1615년에 지은 〈공성왕후책봉고명사은전문〉이 왕의 뜻에 거슬려 파직되었다.

1624년(인조 2) 다시 등용되어 대사헌·대사성·대제학을 거쳐

육조의 판서를 두루 역임했다.

 

1636년 병자호란때 예조판서로 주화론(主和論)을 배척하고

끝까지 주전론(主戰論)을 주장하다 인조가 항복하자 파직되었다.

1639년 청나라가 명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요구한

출병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청나라에 압송되어 6년 후 풀려났다.

 

귀국 뒤 좌의정·영돈녕부사 등을 지냈다.

효종이 즉위하여 북벌을 추진할 때

북벌군의 이념적 상징으로 대로(大老)라고 불렸다.

글씨에도 능했으며, 특히 동기창체(董其昌體)를 잘 썼다.

저서에 〈청음집〉·〈야인담록 野人談錄〉·〈풍악문답 豊岳問答〉 등이 있다.

1653년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1661년 효종 묘에 배향되고, 양주 석실서원(石室書院), 정주 봉명서원(鳳鳴書院),

의주 기충사(紀忠祠), 광주 현절사(顯節祠) 등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 다음 백과사전 발췌 -

 

 

 

 

꾸불 꾸불한 기둥은

용트림하는 모양새로 오랜 세월을

변함없이 지탱하고 있다.

 

 

 

 

담장 너머엔 채 수확하지 않은

노란 모과가 유난히 눈에 들어오기도 하고...

기우뚱 정자를 엿보는 듯.. 

 

 

 

 

전날 내린 눈이 노란 모과의

머리위에 가만히 자릴 잡고 앉았다.

무거워서 힘들텐데도 잘 버티고 있는 형상이다.

 

 

 

 

하얀 담장 너머엔

또 다른 재미들이 즐비하다...

 

 

 

 

청원루...

 

예상에 없는 만남이었지만

둘러보는 내내 무척 감회가 새로웠다.

 

 

 

 

겨울로 가는 길목에서

담장위에 내려앉은 하얀 눈은

유난히 희고 고운 시선으로 전해진다.

 

 

 

 

청원루를 나오면서

어김없이 문고리를 담아보는 센스...

 

 

 

 

저만치 소산마을 어귀를 지키는 솟대도

단단히 겨울채비를 하는 형국이다.

 

 

 

 

다양한 고택이 많은 소산마을...

자세히 섬세하게 둘러보지는 못했지만

늙은 고택과 마을길이 오래도록 기억될것 같다. 

 

 

 

 

소산마을을 둘러보고 나와서

다시금 정자 삼귀정의 소나무숲을 바라보며

하얀 설원의 추억을 고이 담아 보았다.

무척 차가운 날이었다.

 

안동의 소산마을...

청음 김상헌 선생이 말년에 머물렀으며

안동김씨와 깊은 관련이 있는 곳..

물론 나는 안동김씨는 아니다.

 

마을길을 거닐며 느낄 수 있는 고즈넉함과

고택이 주는 그 매력이 무척 좋았던

아주 의미있는 추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