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예산의 수덕사를 방문하는 길에
수덕사 바로 아래에 위치한 오래된 여관으로 유명한
수덕여관을 둘러 보았습니다.
가슴아픈 사연을 더불어 간직한
수덕여관의 이모저모를 사진 몇장으로
둘러보도록 하겠습니다.
수덕사를 들어가기 위한 매표소 근처의 일주문입니다.
이 일주문을 얼마 지나지 않아 좌측으로
수덕여관이 보입니다.
아름아름 보여지는 도로변의 작품들은
방문객의 눈을 덜 심심하게 하기도 합니다.
산사화도 피었더군요...
공세리 성당에서 상사화를 만났는데
다시 수덕사 입구에서 상사화를 만나다니...
무심코...
이응로 화백이 작품활동을 하던 고택이며,
최초의 여류화가 나혜석도 3년간 기거했다는 수덕여관...
수덕여관을 한 바퀴 돌면서 찬찬히 살펴본다.
대문 앞에 꽃을 피운 배롱나무 한 그루가 초가집과 딱 어울린다.
한 많은 세상을 살다간 노화백의 시름도 모르는 체 피어있는 배롱나무 꽃.
무심하게 흐르고 있는 개울의 물.
세월은 그렇게 그렇게 잊히는 것인가 보다.
수덕여관?
여긴 어떤 곳일까?
초가로 된 한옥 한 채가 서 있다.
수덕사라는 고찰의 일주문 곁에 자리하고 있는 이 고택은
도대체 언제부터 이 자리에 있었던 것일까?
충남 예산군 덕산면 사천리 산41에 소재한
충청남도 기념물 제103호인 '이응로선생사적지'.
이 집은 한 때 여관으로 사용이 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수덕여관'이라는 간판을 아직도 달고 있다.
이 수덕여관은 동양 미술의 우수성을 세계 속에 드높인
화가 고암 이응로(1904∼1989) 화백이 작품 활동을 하던 곳이기도 하다.
수덕여관은 이응로 화백이 1944년 구입하여
한국전쟁 때 피난처로도 사용하였으며,
수덕사 일대의 아름다운 풍경을 화폭으로 옮긴 곳이다.
또한 이응로 화백이 1959년 프랑스로 건너가기 전까지 머물면서,
작품 활동을 했던 고택이기도 하다.
ㄷ 자형의 초가집, 방이 많은 것은 여관이기에
수덕여관은 ㄷ 자형의 초가집이다.
정면으로 보면 중앙에 출입문을 두고 한편으로
정자와 같은 높임마루를 들였다.
마루 밑에는 창문이 있는 것으로 보아
부엌이나 창고로 사용한 듯하다.
원형을 복원하였다는 수덕여관은 정면 5칸에,
측면은 한편은 6.5칸, 또 한편은 4칸으로 꾸며졌다.
집을 돌아 안으로 들어가 보니
우측의 날개채는 모두 6개의 방을 드렸다.
아마 이곳에서 손님들이 묵었을 것이다.
객방의 방문 앞에는 툇마루로 연결을 하였으며,
중앙에도 방이 있다. 정자마루를 올라갈 수 있는 이 방은
사랑채 대용으로 사용이 된 듯하다.
좌측 날개채는 안채의 기능을 가졌을 것으로 보인다.
수많은 고초를 받은 이응로 화백
1904년 1월 12일 충청남도 홍성군에서 출생한 이응로 화백은,
향년 84세인 1989년 1월 10일 프랑스 파리에서 사망했다.
사인은 심장마비인 것으로 밝혀졌으며,
최종 국적은 프랑스였다.
이응로 화백은 동양화, 서양화는 물론
판화까지 두루 재능이 뛰어났다.
홍성에서 출생을 하였지만
어린 시절은 예산에서 주로 성장하였다.
좌측엔 넓은 툇마루를 놓았으며,
뒤편에는 장독과 우물이 있다.
이 고택 앞으로는 덕숭산에서 나오는 물이
시원한 소리와 함께 흘러내린다.
한 여름 더위에 지친 심신을 달래주기에 좋은 환경이다.
아마 이응로 화백이 이 집을 사들인 것도, 주변의 경관 때문이었을 것이다.
수덕여관의 우물...
여류화가 나혜석도 살다간 수덕여관
이 수덕여관은 수원 출신인 최초의 여류화가
나혜석이 묵었던 곳이기도 하다.
일설에는 나혜석이 수덕사에서 3년간 머물렀다고 하지만,
사실은 수덕사의 경내가 아닌 이 수덕여관이라는 것이다.
미술계 남녀 거장이 묵었던 이 수덕여관이야말로
우리 미술사에서 새롭게 조명해야 할 곳이다.
동백림사건에 연루되어 돌아 온 이응로 화백이 남긴 작품
이응로 화백은 집 앞에 있는 바위에
1969년 동백림 사건으로 귀국했을 때,
고향산천에서 삼라만상의 성쇠를 추상화하여 표현했다.
수덕사를 오르다가 일주문을 지나 금강문을 조금 못미쳐
왼편을 보면 조그마한 초가집..
이곳은 우리나라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여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수덕여관이 있다.
수덕사와 수덕여관에 관련된
세 여자와 세 남자의 얽힌 가슴아픈 이갸기가 전해져 내려오는데,
세 여자란 김일엽, 나혜석. 박귀옥(이응로 화백의 본부인)이고,
세 남자란 송만공 스님, 이응로 화백.
김태신(일당스님=김일엽과 일본인 사이에 난 사생아)을 말한다고 한다.
"예전에는 이 수덕여관 앞에 더덕구이 집들이 즐비했어요.
그때만 해도 상당이 싼값에 더덕구이를 먹을 수 있었죠.
개천가에 자리를 잡고 앉아 더덕구이에 동동주 한 잔 하면,
세상시름을 다 잊을 수가 있었으니까요."
뒷편의 다른 방향에서 수덕여관을 바라보았다.
수덕사 뒷편 도로에서 큰아이가 포즈를 취해본다..
수덕사를 방문한 많은 사람들은
수덕여관의 실체를 모르고 지나치기 일쑤다.
"아이고 더워라 이놈의 삼복더위 언제 끝나지"
수덕여관 입구에서 문득 만난 멍멍이 한마리 마저도
무진장 더운 날씨에 혀를 내 두른다.
충남 예산 수덕사 입구의 수덕여관...
각종 매체와 인터넷에서만 간접적으로 보다가
현장에서 직접 오감으로 느껴보고 간절히 둘러보았더니
당시 시대적 상황과 아름다운 이야기가 오롯이
가슴에 새겨지는듯 했다.
수덕사를 가시거던
이 수덕여관을 지나치지 마시고
꼭 둘러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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