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늘게 비가 내리고 있다.
하늘은 무척 흐리지만 해마다 이맘때면
조용하게 방문하는 곳이 문득 기억으로 재생된다.
장호원 가는길의 왜가리 서식지다.
비록 기상여건은 안 좋지만 평소 시간내기 힘든 내가
그런 여건을 일일이 따질 형편이 아니다.
무작정 달려보자 왜가리 나라로..
현장에 도착했지만
여전히 하늘에선 가늘게 비가 내리고 있다.
가장 먼저 포즈를 취해주는 저 두녀석은
부부일까요? 불륜일까요?
나는 봐도 잘 모르겠다.
높은 나뭇가지 끝에서
좌우로 고개를 돌리며 세상을
감상하듯 두리번 두리번 거린다.
먹이사냥을 위한 어떤
준비자세인가?
그럼 왜가리라는 녀석에 대해서 알아보자.
왜가리
백로과
여러가지 기상 여건이 안 좋아
사진은 별로지만 그네들의 삶을 들여다 보며
먼 발치에서나마 그들의 일상을 엿보도록 하자.
"배가 고픈데 엄마 아빠는 왜 아직 안 오는거야?"
"투덜 투덜~ 곤지랑 곤지랑"
어떤 둥지에서는 어린 새끼녀석들이
배가 고파 징징거리고 있다.
그때 하늘 멀리 한마리의 어미 왜가리 한마리 포착...
재네들의 엄마인가?
어 어.. 착륙 준비를 하는것 보니
저녀석이 어린 녀석들의 엄마쯤 되는가 보다.
ㅎㅎㅎ 맞네^^
투정 부리던 그 녀석들의 엄마구나.
"애들아! 둥지 잘 지키고 있었냐?"
"둥지를 찾아온 낯선이는 없었고?"
"응 엄마..배고프니깐 얼른 먹이부터 줘"
"그랴..잠시만 기다려..
일단 엄마는 먹이를 꺼내야 되니까 ..차례를 지켜"
그리곤 차례대로 한마리씩 부리를 벌리고
새끼들의 입안 깊숙한 곳으로 잡아온 물고기를
토해내어 집어 넣어준다.
그때까지 옆의 두녀석은 참고 기다리고 있다.
"음~ 다음은 내 차례겠지" 라며..
그런데
첫째에게 행하던 먹이 전달 의식이
조금 지연되자 바로 옆의 녀석은 급기야
참아내질 못하고 엄마의 부리를 휘어잡는다.
"엄마 그만해.. 나도 좀 줘"
이제는 전쟁이다.
욕심많은 그 녀석은 결국 다른 새끼를 떼어내고
자신의 부리로 엄마의 부리를 휘어 잡았다.
그 와중에 엄마 왜가리는 흥분하지 않고
차분하게 세마리의 새끼 왜가리에게
먹이 전달 의식을 무사히 마친다.
비록 이렇게 전쟁을 치루듯
사투를 벌이는 새끼 녀석들이지만
엄마 왜가리에겐 마냥 귀엽기만 하기에...
"아! 이제 살만하군...배 부르다"
배부른 어린 왜가리들은 나래짓을 하며
의기양양한 포즈를 취하기도 한다.
그때 어떤 눈치없는 한 녀석이
"엄마 또 먹이 사냥 안가?"
엄마는 철없는 녀석의 그 소리에 화가 나서
털을 곤두세우며 째려보기까지 한다.
"에고.. 내 팔자야.. 그래 알았다"
결국 엄마 왜가리는
또 다시 일터로 출발하고야 말았다.
그네들의 삶이나 우리네 삶이나 어린 녀석들을 향한
엄마의 모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 옆 둥지에서는
"엄마, 옆집 엄마는 부지런히 일나가는데
엄마는 왜 안가고 가만히 쉬고 있어?" 라고 한다.
"고것들 참 말 많네..나도 좀 쉬어가면서 일하자"
약간 화가 난듯 털을 세운 엄마 왜가리의 한숨소리가
숲속에 매복한 내게까지 들린다.
유난히 부리가 붉은 이웃집 아저씨 왜가리...
어린 새끼가 있는 둥지에서는
항상 긴장이 고조되기도 하고 엄마 아빠 왜가리들의
일터로의 분주한 사냥이 이어지고 있었다.
다른 종들과는 다르게 댕기가 이쁜 왜가리...
엄마 왜가리와 아빠 왜가리가 번갈아 가며
먹이 사냥을 하지만 간혹 기상여건이 좋지 않을땐
낯술 한잔 하며 농땡이 친다는
소문이 사실인가 보다.
그때 갑자기...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며
머리 바로 위로 한마리의 왜가리가
후다닥 나래짓하며 날아간다..
가까이서 보니깐
날카로운 부리가 제법 무섭다^^
다른 종들의 침입을 막고자
유난히 나무 끝자락에 둥지를 트는 녀석들...
꼭 이렇게 집단으로 서식하며
함께 부화하고 함께 생활하는 공동생활의
대표적인 조류가 아닌가 생각된다.
유난히 개체수가 줄어든 백로 한마리가
어느순간 나타나더니 바람과 함께 사라지고 없다.
하염없이 내리는 가랑비를 맞아가며
집단으로 서식하는 왜가리 녀석들의 일상을 엿보는
좋은 시간이었지만 나오면서 씁씁함을 감추진 못했다.
주차된 곳으로 돌아왔는데
동네 어르신 두분이 다소곳이 서 계신다.
일단 연세 많으신 어르신께 넙죽 절하며
"올해는 왜 이렇게 개체수가 줄었는지 모르겠네요"라고 했더니
한 어르신 "왜가리는 거의 그대로인데 백로가 몇마리 안왔어요" 하신다.
그때 바로 옆에 계시던 어르신은 대뜸
"요즘 말이야, 사진 찍는 양반들 땜에 이 주변이
온통 쓰레기로 넘쳐나서 환장하겠어요"라고 넋두리를 하시며
손가락으로 입구의 불에 타다 만 쓰레기 더미를 가르킨다.
어른신들 말씀이
아침 일찍 서너명씩 단체로 몰려 와서는
온종일 기다리며 사진을 찍고 돌아간 뒤에 현장에 가보면
컵라면부터 심지어 소주병까지 온갖 쓰레기들을
그대로 방치하고 슬그머니 간다고 한다.
순간 얼마나 창피하고 낯이 뜨거운지 몰랐다.
두분 어른신께 대신 사과를 하고 제 신분을 밝히고
앞으로 지역의 자연보호를 위해 더 많이 노력하겠다고
분명히 말씀드렸더니 너무 좋아라 하셨다.
장호원 근처의 왜가리 서식지로
멋진 사진 담아내시려 가시는 진사님들...
"이젠 가지고 오신 음식물은 다 드신 후 쓰레기는
왜가리 나라 현장에 그냥 버리지 마시고 다시
가져가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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