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제1호 숭례문(남대문)의
복원기념식 그 현장을 다녀왔습니다.
600여년 세월동안 서울 한복판을 지키며
남방의 힘과 기품을 자랑하던 숭례문이 2008년 2월
방화로 소실된 이후 5년 3개월만에 복원되었습니다.
그 숭례문 복원 기념식 현장의 이모저모를
몇장의 사진으로 둘러보겠습니다.
기념식 전 아직은 현판이 가려진 상태..
복원된 숭례문의 가장 두드러진 것은
남대문에 이어진 좌우성곽이 동편(남산 쪽)으로 53m,
서편으로 16m 복원되었다는 사실...
많은 국민들의 관심과 더불어
기념식 현장의 사방팔방엔 인산인해를 이루고...
뭔가 모르게 아직은 낯설어 보이는....
수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카메라로
기념식 직전의 숭례문을 담아내고 있었다.
그럼 숭례문(남대문)에 대해서
백과사전의 도움을 받아 살펴보도록 하자.
남대문(숭례문)
국보 제1호. 1396년(태조 5) 창건되어
1448년(세종 30) 개축했다.
조선왕조가 도읍을 한양으로 정한 뒤,
정궁인 경복궁의 방향에 의해 남문인 숭례문이 정문이 되었다.
풍수지리에 의해 편액도 다른 문들과는 달리 세로로 쓰여졌다.
이는 서울 남쪽에 있는 조산(祖山)인 관악산이 북쪽의 조산인 북한산보다 높고
산의 모양도 불꽃이 일렁이는 듯하여 관악산의 화기를 맞불로서 꺾기 위한 것이며,
오행에서 남쪽을 가리키는 예(禮)를 숭상한다는 의미를 담아 숭례문이라 이름했다.
1934년 일본이 '남대문'으로 문화재 지정을 했으나
1996년에 역사 바로세우기 사업의 하나로 일제가 지정한 문화재에 대한
재평가작업을 하면서 '숭례문'으로 명칭을 환원했다.
앞면 5칸, 옆면 2칸의 2층 건물인 이 문은
화강석의 무지개문을 중앙에 둔 거대한 석축 위에 세워져 있으며,
지붕은 우진각지붕으로 상하층 모두가 겹처마로 되어 있고
사래 끝에 토수(吐首)를 달았다.
추녀마루에는 잡상(雜像)과 용두(龍頭)를 두고,
양성한 용마루에는 취두(鷲頭)를 두었다.
2층인 이 문의 구조는 위층의 4모서리 기둥이
아래층까지 내려와 견고하게 결구되었으며,
위층 중앙에는 4개의 고주를 두었다.
다포계 형식의 공포를 얹은 이 문의 위층은 외삼출목,
아래층은 외이출목으로 구성되어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다포계 목조건축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조선 초기 건축에서 나타나는 특징을 잘 보여준다.
또 1962년 해체복원공사 때 발견된 상량문(上樑文)은
당시의 건축생산체계와 장인조직을 밝히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
현존하는 성문 중 규모가 가장 크며
조선 초기 다포계 양식을 대표하는 건물이다.
- 백과사전 발췌 -
주변의 대형 빌딩엔
숭례문 복원 기념과 함께 다양한 문구의
현수막들이 펄럭이고 있었다.
남여노소 할것 없이
동서남북으로 자리를 가득메운 시민들...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이제 기념식은 시작되고 있다.
남대문 시장 방향 도로변을 가득메운
기념식을 보러 오신분들...
그럼 숭례문의 뒷쪽도 살펴보자...
이곳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다.
그나마 복원하면서 기존의 하단부 석재는
그대로 사용했다니 다행스럽긴 하다.
복원된 숭례문의 옆 모습이
굉장히 웅장하고 깔끔해 보인다.
난간의 잡상의 숫자도 달라졌다고 한다.
원래의 모습을 찾았다고 하니..
그럼 복원 이전의 사진 몇장을 살펴보자.
구한말의 숭례문...
6.25 전쟁 직후의 상처 투성이의 숭례문...
화재 이전에 시민들에게 개방된 숭례문...
비록 좌우의 성곽의 흔적은 없지만
숭례문 자체는 잘 보존되고 있었던 화재 이전 상황...
화재 직전의 숭례문 야경...
숭례문 화재
2008년 2월 9일 저녁 20시 50분경
69세의 방화범에 의해서 화재가 발생하여
최신 소방장비를 갖춘 서울지방 소방청의 대규모 진화작업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익일인 10일 새벽 2시에 겨우 불길을 잡았는데
국보 제1호 숭례문은 처참한 모습으로 전소되었다.
대한민국의 상징이요 자존심처럼 여겨지던
국보 제1호 숭례문이 짧은 시간에 국민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자
국민들의 분노와 슬픔은 말로 형용할 수 없었고...
아무리 이기주의가 팽배한 시대에 살고 있지만
이렇게까지 해야만 했을까..
화재 후 전소되어 처참한 숭례문...
화재 후 어느 시민이 현장에 두고간 국화송이...
숭례문의 창건부터 화재까지의 연혁...
드디어 숭례문의 글씨가 보인다.
참석한 많은 시민들은 말없이 지켜만 볼뿐이다.
그동안 지켜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으로
물끄러미 현판을 바라보았다.
화재 이전 기존의 숭례문과는 다르게
좌우로 조금씩 날개를 단 듯 성곽이 복원된 숭례문...
참석한 수많은 시민들은 스마트폰과 카메라로
그 역사적인 현장을 담아내고 있다.
남대문은 인의예지 중
예(禮)를 숭상하는 숭례문으로,
1398년 조선 수도 한양의 정문으로 창건된 이후,
이 땅을 지켜온 대한민국 국보 제1호로 마치 우리들의 어머니처럼
수도 서울과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탱하는 상징적 관문이었다.
이제 다시 그 웅비의 나래를 펼치며
굳건이 자리를 지켰으면 하다.
지금의 관심처럼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랑과 애정으로
숭례문 보존에 열과 성을 다했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 화재 이전에 방문을 했으니
참 오랫만에 다시 찾은 숭례문...
예전의 그 모습은 아니었지만
수도 서울을 지키는 관문으로서 이렇게
우리들 곁으로 다시금 돌아왔다.
숭례문(남대문)...
국보 제1호라는 상징적인 의미와 더불어
이제는 더 이상 아픈 상처를 받지 않았으면 하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관문을 상징하는 숭례문..
희생과 시련을 극복하고 의연한 모습으로 거듭난 이때,
커다란 기쁨과 함께 우리 민족혼을 일깨우는
문화창달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화재 후 5년 3개월 동안
우리는 문득 숭례문을 잊고 있었다.
하지만 복원 기념식에 직접 참여하여
주변의 수많은 인파를 둘러 보면서 다시한번
숭례문의 소중함과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아직은
살아있는 그 혼을 느낄수 있었다.
유난히 문화유산 탐방을 좋아하며
전국 곳곳의 문화재를 둘러보고 있지만
그동안 낙산사 화재 등에서 우리가 보아 왔듯이
시급한 문화재 보존 대책이 필요함을 뼈저리게 느꼈으며,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다시는 이런 화마로 인한
소중한 문화재의 소실이 없었으면 하다.
숭례문 복원의 의미는 새로운 역사가 아닌
원래 우리네 가슴속에 살아 숨쉬는
그 역사 그대로임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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