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답사기

영양 두들마을에는 우리 전통의 혼이 그대로 전해지고 있다...

금모래은모래 2012. 12. 7. 13:36

 

 

경북 영양에는 주실마을과 두들마을이란

두곳이 전통마을로 알려져 있다.

 

지난번 포스팅에서 주실마을과

청록파 시인 조지훈 선생에 대한 이야기를

사진 몇장을 통해서 살펴보았다.

 

오늘은

두들마을과 그 마을에 얽힌 다양한 내력 및

마을 출신 인사들이 어떤분이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두들마을 하면 가장 먼저 떠 오르는 사람이

현대문학의 거장인 이문열 선생이다.

 

그리고

여중군자라 칭하는 장계향의 조선시대 음식디미방의

요리서와 관련된 곳이 바로 이 두들마을이다.

 

자세한 설명 보다는

사진으로 그 두들마을의 다양함을

둘러보도록 하자.

 

 

 

 

 

주차장에서 바라본 두들마을...

 

 

 

 

 

영양 석보면 원리리 속칭 '두들마을'은 언덕이라는 뜻으로

가파르게 깎아지른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다.

 

영양에서 동남쪽으로 20여㎞ 떨어져 있으며

광려산을 뒤로 하고 남향으로 아늑하게 자리잡고 있다.

 

조선시대 때 광제원이 있었던 곳으로 석계 이시명 선생과

그의 후손 재령 이씨들의 집성촌으로 전통가옥 30여 채가 있다.

이 마을 옆 둔덕에는 석계 선생의 서당인 석천서당이 남아 있고

마을 앞을 흐르는 화매천을 둘러친 절벽바위에는 석계 선생의 아들인 이숭실이

새겨놓은 동대, 서대, 낙가대, 세심대 등 유묵도 뚜렷하게 보인다.

 

‘그해 겨울'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등

이문열의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삶의 역정이 펼쳐지는 무대이기도 하다.

이문열이 세운 광산(匡山)문학연구소도 여기에 있다.

 

 

 

 

 

두들마을 표지석과 공사 간판..

또다른 마을길이 한창 공사중에 있었다.

 

 

 

 

 

언덕위의 고즈넉한 마을 두들마을...

 

 

 

 

 

장계향의 요리서인 음식디미방의

전통은 아직도 이곳에서 살아 숨쉬고 있었다.

 

 

 

 

 

고택 체험도 가능하다.

 

 

 

 

 

전난 저녁 이곳을 방문한 분들인 듯 하다.

고택체험은 이곳의 또 다른 별미인양 인기가 많다고 한다.

 

 

 

 

 

옛것이 아닌 현대와 공존하는 그 멋스럼이 좋다.

 

 

 

 

 

두들마을 안내간판

 

 

 

 

 

석천서당

 

 

 

 

 

거북이?

세월의 무게가 전해진다.

 

 

 

 

 

빨래집게도 담아보고^^

 

 

 

 

 

이 향나무에서 소설가 이문열의

기상이 느껴진다.

 

 

 

 

 

예전에 없던 건물들이 많이 생겨났다.

 

이제 두들마을은 영양의 관광자원에서 빠지면

안되는 중요한 코스로 자리매김한 것 같다.

 

 

 

 

 

감나무와 기왓담장...

 

 

 

 

 

겨울빛 햇살을 머금은 문고리가 유난스럽다.

 

 

 

 

 

둘러보는 마을길이 너무 좋다.

 

 

 

 

 

두들 책사랑...

 

 

 

 

 

여러분들의 어르신들이 이 두들마을을 방문하셨다.

이른 아침이라서 방문객이 별로 없었는데...

 

 

 

 

 

이 길이 너무 좋았다...

감나무의 사계가 궁금하다.

 

 

 

 

 

멀리 음식디미방이 보인다.

 

 

 

 

그럼 이쯤에서

여중군자 장계항이 누구인지 알아보자.

 

 

정부인 안동장씨는 노량해전을 대미로 7년간에 걸친 대전쟁,

임진왜란이 막 끝나가던 1598년 11월, 아버지 경당 장흥효(1564~1633)와

어머니 안동 권씨 사이의 외동딸로 안동 검재(금계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학봉 김성일의 문인으로 당대 학자로 인정받았으며,

많은 제자들이 그의 집을 드나들었다.

그러한 집안 분위기 탓일까,

어린 소녀는 사랑방을 기웃거리면서 아버지의 가르침을 곁눈으로 배웠다.

아버지는 퇴계 학풍을 이어 받은 학자답게 '몸을 삼가고',

'항상 공경하는 자세'를 제자들에게 강조했다.

 

총기 있던 소녀는 10세 정도 되는 나이에 <소학>과 <십구사략>을 깨쳤고,

13세가 되어서는 <백발 늙은이>, <몸가짐을 조심하다>,

<소소한 빗소리>와 같은 주옥같은 시들을 지었다.

 

글씨도 곧잘 써서 그녀가 쓴 초서체 '적벽부'는 당대 서예가 정윤목이

기풍과 필체가 호기로워 우리나라 사람의 글씨와는 다르다"고 평할 정도였다.

 

나이 일흔 무렵에는 눈이 어두운 가운데서도

자손들을 위해 애써 음식하는 법을 정리하여 남겼다.

음식디미방이라고도 하고 규곤시의 방이라고도 불리는 요리책으로,

오늘날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로 기록된 요리서이자

아시아에서 여성에 의해 쓰여진 가장 오래된 조리책으로 주목받고 있다.

 

장씨는 1680년 83세를 일기로 자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양 석보에서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셋째 아들 현일은 "내가 노둔하고 우매하여 지극한 가르침을 따라 실행할 수 없었다.

그러나 평소 야비한 말과 버릇없이 구는 말을 내 입에 올려 말하거나

남에게 함부로 하지 않은 것은, 실로 어머니께서 어릴 때 부터 금지하고 경계한 탓이다"고

<정부인 안동 장씨 실기>에서 그 고마움을 회고하였다.

 

 

 

 

 

전체적으로 풍기는 마을 이미지가 참 평온하고 좋다.

주실마을과는 또 다른...

 

 

 

 

 

두들마을 입구엔

천재시인 이병각 시인의 시비도 있다.

 

 

 

 

 

다양한 형태의 고택들이 즐비하다.

 

 

 

 

 

전통을 이어온 언덕 두들마을...

 

 

 

 

 

청송에서 출발하여 영양과 봉화

그리고 강원도의 영월로 넘어가는 둘레길인 외씨버선길이

여전이 이곳을 경유하고 있었다.

 

이렇게 경북 영양에는

주실마을과 더불어 두들마을이라는

우리 전통의 혼이 살아 숨쉬는 아름다운 마을이 있다.

 

내고향 영양의

두들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