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교산 허균과 부친 초당 허엽 등 그의 가족 묘지를 다녀왔습니다.
천봉기념비(遷奉記念碑)
허균(許筠)의 가족 묘역(墓域) 입구에 세워진 천봉기념비(遷奉記念碑)를 세운 이유는
원래 허균가족묘지는 본래 서울 서초동에 자리하고 있었으나 도시개발로 인해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맹리 산63의 현재 자리로 옮겨졌고
이를 기념해 1968년 이 비석을 세웠다고 한다.
허균(許筠)묘지의 위치는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맹리 수정산 산63에 있다.
영동선 고속도로 원주방향으로 가다가 양지 인터체인지로 진입한다.
계속 직선하여가면 맹리가 나오는데 우측으로 내려가 굴다리 밑으로 좌회전하여
약 500m가면 눈앞에 양천허씨 (陽川許氏)가족 묘지가 보인다.
우선 하고 싶은 말이 있다.
허균(許筠)의 〈홍길동전〉은 우리나라 최초의 국문 소설로서
우리나라 문학사에 그 비중이 매우 크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허균과 〈홍길동전〉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허균과〈홍길동전〉은 조선시대 대표적 문인(文人)이며 걸작으로 평가되며
세계적인 고전문학(古典文學)이다.
그런데 묘지를 안내하는 팻말 하나 없고
묘역 앞에 허균을 소개하는 표지판(標識板) 하나없다.
허균(許筠)의 시(詩)나 문집(文集) 유물 등은 역사적으로 문화재다.
양천허씨(陽川許氏)의 묘역은 개인 가족묘지이기 전에 역사적 인물의 묘지이다.
문화재청이나 용인시가 문화재 규정에 따르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허균(許筠)이라는 역사적 인물의 비중에 비하여 너무 무성의하고 역사의식이 없다.
만일에 문화재 규정에 따른다면 그것은 핑계고 규정을 고쳐야 한다.
참고자료 발췌 : 미주학당
묘지 들어가는 입구...
묘지앞 도로명 주소
허균의 부친인 초당 허엽의 신도비
노수신이 비문을 짓고 석봉 한호(한석봉)가 글을 썼다고 한다.
1969년에 세워진 허균의 누이 난설헌 허초희의 시비
난설헌 허초희 시비 뒷면..
어느 묘지가 누구의 묘지인지 구별도 되지 않는다.
망자는 말이 없는가 보다...
드디어 인터넷상에 돌아다니는 사진과 비슷한 묘지 발견...
허균의 묘지다.
허균(許筠)은 선조 2년(1568) 11월 3일 강원도 강릉 외갓집에서 출생하였다.
자는 단보(端甫) 호(號)는 교산(蛟山)이다.
교산(蛟山)은 허균의 생가이며 외갓집인 애일당(愛日堂) 부근에
조그마한 언덕 같은 야산으로 마치 용(龍)이 되지 못한 구렁이인 이무기가 기어가듯
꾸불꾸불한 모양으로 되어 있어 그 언덕을 따서 지은 호(號)다.
허균(許筠)은 선조 22년(1589)에 생원이 되고
선조 27년(1594)에 정시문과에 급제하여 검열, 세자시강원 설서(說書)를 지냈다.
선조 30년(1597)에는 문과 시중에 장원급제하였고 이듬해 황해도 도사가 되었다가
서울 기생을 끌어들였다는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다.
선조 39년(1606)원접사 종사관이 되어 명나라 사신 주지번을 영접하여
명문장으로 명성을 떨쳤고 광해군 5년(1613)에는 계축옥사(癸丑獄事)로
한때 친교가 있던 박응서 등이 처형되자 신변의 안전을 위해
당대의 권신(權臣) 이이첨에게 아부하여 예조참의 호조판서 승문원부제조를 지냈으며
광해군 9년(1617) 폐모론(廢母論)을 주장하는 등 대북파의 일원으로 광해군의 신임을 얻었다.
같은 해 좌참찬으로 승진되었으나 이듬해 하인준 등과 반(反) 광해군 반란을 계획하다가 탄로되어
가산(家産)이 적몰(籍沒)되고 8월 24일 50세를 일기로 참형(斬刑)되었다.
반역죄(反逆罪)로 참형(斬刑)을 당하여 시신을 수습할 수 없어서
그의 혼(魂)만을 달래는 초혼장(招魂葬)을 치르게 되어 허균의 묘에는 시신(屍身)이 없다고 한다.
홍길동전(洪吉童傳)을 비롯하여 수많은 명저(名著)를 남겼으며
문집으로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가 있다.
시신없이 치러진 초혼장의 허균과 두 부인의 합장묘...
허균의 한시 한수를 소개 한다.
감흥(感興)
中夜起四望(중야기사망) - 밤중에 일어나 사방을 들러보니
晨辰麗晴昊(신진려청호) - 별들이 갠 하늘에 곱기도 하여라.
溟波吼雪浪(명파후설랑) - 푸른 바다에 눈 같은 물결 포효하고
欲濟風浩浩(욕제풍호호) - 건너려니 바람이 너무나 넓게 부는구나.
少壯能幾時(소장능기시) - 젊음은 몇 때나 지탱할런가.
沈憂使人老(침우사인노) - 근심에 잠기니 사람이 늙어간다.
安得不死藥(안득불사약) - 어찌하면 죽지 않는 약 얻어
乘鸞戲三島(승난희삼도) - 난새를 타고서 삼도를 노닐어 보꺼나.
허균(許筠)
이제 찾았으니 여유를 가지고 뒷쪽에서도 보고...
허균의 묘지 뒷쪽 언덕에 있는
아버지 초당 허엽 선생과 어머니 청주 한씨의 묘...
허균의 아버지 허엽(許曄)은 중종 12년(1517) 출생하였고
호(號)는 초당(草堂)이다.
강릉 초당의 호(號)에서 따온 마을 이름이며 초당 두부로 유명하다.
명종 1년(1546)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한 뒤 여러 벼슬을 거쳤으며
대사간에 오른 후에는 향약(鄕約)의 시행을 건의 하기도 하였다.
선조 8년(1575)년 동서(東西) 분당으로 당쟁이 시작되자
훗날 허균의 장인이 되는 김효원의 추대를 받아 동인의 영수로 활동하였으며
부제학을 거쳐 경상도관찰사가 되었다가 병으로 사퇴하고
서울로 올라오던 길인 선조 13년(1560) 2월 4일 64세로 상주 객관에서 삶을 마감하였다.
첫부인 청주 한씨와 사이에 장남 허성과 두딸,
그리고 후처인 강릉 김씨와 사이에 허봉 허균 허초희를 두어 총 3남 3녀의 자손을 남겼다.
허엽은 화담 서경덕과 퇴계 이황의 제자로 학문을 배웠다.
대사헌으로 재직하면서 바른 말을 잘 했던 것으로 이름났는데
그런 까닭에 선조(宣祖)가 허엽을 귀중히 여겼다.
허엽은 경전(經典)의 훈계를 좋아하여 늙으면서도 그 마음가짐을 단정히 했고
그리하여 사람들이 모두 그를 어진 인물이라 칭송하였다.
허균의 가족묘역은 양천 허씨 종중 묘들이 모여 있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맹리 산63번지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허균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들인 허성과 허봉,
그리고 부친인 허엽 부부가 함께 자리하고 있는데 허균의 누이인 허초희는
경기도 광주 시댁묘역에 안장되어 있다.
허난설헌의 묘는 이 묘역에 없고
경기 광주시 초월면 지월리 산29-5 에 있는 허난설헌 시댁의 묘역에 같이 있고
이곳은 난설헌 허초희의 시비만 있다.
노란 은행잎이 요렇게 변했다.
혀균의 집안은 고려시대로부터 이름난 문벌(門閥)이었다.
부친 허엽(許曄)과 그의 아들인 허성 허봉 허균, 그리고 사임당 신씨, 황진이와 함께
조선 3대 여류문인으로 평가 받는 난설헌 허초희까지 모두 당대 재상과 문사(文士)로 이름을 날렸다.
한 집안에서 한명도 나오기 힘든 대문인(大文人)이 동시대에
다섯 명이나 나왔다는 것은 분명한 축복이었다.
그러나 이 집안은 막내 허균 광해군에 대한 반역죄 말미암아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하고 말았다. 왕조국가에서 혁명이라 함은 곧 반역(叛逆)을 의미 하는 것이었고 그 꿈이 실현되지 못했다는 것은 자신과 집안의 처참한 종말을 뜻하는 것이었다. 허균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간 후, 그의 집안도 철저하게 몰락하였다. 일설에는 허균으로 인해 집안이 망하자 허엽의 무덤에서 통곡소리가 들렸다고도 한다. 허균은 여러모로 시대를 앞서간 인물이었다. 성리학적 세계관으로 무장되어 있던 고루하기 그지없는 조선사회에서 허균은 명나라에 갔다가 조선인으로 는 최초로 천주교를 들여와 믿었으며 홍길동처럼 차별받는 신분들에 의한 혁명을 꿈꾸었다. 그러나 허균에게 그 시대는 자신의 시대가 아니었다. 판결문에서 서명을 거부한 채 사형장으로 끌려 나가면서 “할 말이 있다”고 외쳤지만 허균은 최후의 일성(一聲)은 그 누구도 들을 수 없었다. 과연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묘지의 앞 들은 이런 논으로 형성되어 있다.
비록
찾아가는데 너무 힘들고
현장에서 스마트폰을 켠채 두리번 거리긴 했지만
참 유익하고 값어치 있는 탐방이었다.
용인에는 허균의 묘지가 있다.
하지만 그의 시신은 없다.
그곳에는 그의 아버지 초당 허엽과 허균의 두 부인 그리고
허균의 형 등 가족묘지와 난설헌 허초희의 시비와
한석봉의 필적까지도 덤으로 둘러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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