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여행 이야기

'지평리 전투' 그 현장을 가다...

금모래은모래 2012. 2. 23. 17:06

 

 

6.25 전쟁과 관련하여

우리나라 10대 전투에 들어가는

경기도 양평군 지평리 전투의 그 현장과

지평전투 전적비가 세워져 있는 

지평리를 다녀왔습니다.

 

지평리 전투에 대해서

많은분들이 너무나도 생소해 하실것 같아서

관련자료를 백과사전 등을 통해서

아래와 같이 간단하게 요약하여 찾아 보았습니다. 

 

 

 

 

 

 

지평리 전투는

 

1951년 2월 13일부터 2월 15일까

경기도 양평군 지평리 일대에서 원형 방어진지를 구축한

미국 2 보병사단 23 연대전투단(Regiment Combat Team,RCT)과

23 RCT에 배속된 프랑스 대대가 중국 인민해방군 39군

3일간 벌인 격전이었다.

 

3일 동안 완전히 포위된 미군 23 RCT와 프랑스 대대는

포위 3일째인 2월 15일에 미국 1 기병사단

5 기병연대 3대대를 주축으로 편성된

크롬베즈 특별임무부대에 의해 구출되었고,

중국군은 큰 피해를 입고 철수한 전투다.

 

 

 

 

 

 

한국전쟁당시 북진을 거듭하여

한반도 통일의 목전에서 예상치 못했던 중공군의 개입으로

유엔군과 국군은 압록강을 뒤로 한채

1 .4 후퇴라는 비극을 다시한번 겪게 된다.

 

중공군에 의하여 서울이 재차 함락되고

함흥 철수작전이 실시되면서 한반도에는

바야흐로 수많은 이산가족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중공군이 인해전술로 밀고 내려오기를 수차례

이름하여 2월공세가 시작되었다.  

 

유엔군의 반격을 위하여 지평리에 도착한

미 2사단 23 연대전투단(프랑스군 대대배속)이

1951년 2월 13일부터 3일간 4천여명의 병력으로

중공군 1개 군 9만여명의 포위공격을 격퇴하고 중공군을 괴멸시켰다.

 

이를 기념하고 이 전투에서 전사 및 실종된 미군과 프랑스군 장병들의

넋을 기리고져 이 기념비를 세웠다.

 

지평리(砥平里) 는 중앙선 열차가 통과하며

원주-문막, 여주-이천,장호원,양평등으로 진출시 주요 교통요충지로서

주변이 높은 산으로 둘러쌓여 분지를 이루고 있는곳이다.

 

중공군은 지평리를 점령하고 남한강을 도하하여

서울의 남쪽으로 진출을 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때 지평리에는 라운드 업작전에 투입되었던

미2사단 23연대가 배속된 프랑스군 대대와 미37포병대대,

82방공포대대 B포대, 503포병대대 B포대등으로 편성된 연대전투단이

지형의 잇점을 이용하여 전면방어를 편성하고 있었다.

 

여기에 중공군 39군 예하의 3개 사단이 지평리를 그 특유의

나팔과 굉과리를 동반한 인해전술로서 포위해 오고 있었던 것이다.

 

 

 

 

 

 

1951년 2월 13일 드디어 중공군이

지평리 전방에서 대규모로 집결중이라는 것이

주민들의 제보로 확인되었고

어둠이 깔리면서 중공군의 신호탄이 하늘을 수놓는 가운데

지평리는 완전히 포위되고 말았다.

 

한겨울 지평리의 추위는 살을 에이는 듯하였고

장병들은 긴장속에서 전투준비를 갖추고

중공군이 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를 지났을까 중공군의 박격포탄이

여기 저기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예의 그 나팔소리가 멀리서부터 들려오고 있었다.

 

나팔, 호각, 괭과리. 북소리가 요란하게 울려오기 시작하면서

중공군은 떼를지어 몰려들었고 장병들은 일제히 사격을 개시하여

중공군의 1제파, 2제파, 3제파를 차례로 격퇴하였다.

중공군의 시체가 산을 이룰 지경이 되었다.

 

 

 

 

 

 

 

전적비 앞 도로변에는

이렇게 현수막이 설치되어 있었다.

 

 

 

 

 

 

지평지구 전투 전적비

 

 

 

 

 

 

많은 차량들이 다니는

70번 국지도 도로변에 위치한 전적비에는

이곳을 특별히 찾는 발길들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지평리 전투의 교훈

 

이 전투는 중공군이 한국전쟁에 개입 후

후퇴와 패배를 거듭하던 유엔군이

처음으로 대승을 거둔 전투로서

그동안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던

유엔군이 거둔 최초의 완벽한 승리라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전장에서 지휘관이 어떻게 행동하여야 하는가 하는

지휘관의 자세에 대한 수범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미 23연대 전투단의 프리만 연대장은

부상중에도 후송을 거부하고

장병들과 생사를 함께 하고져 하였으며

미 8군 사령관 리지웨이 장군이 중공군의 포화를 뚫고

헬기로 포위된 전장을 방문했을 때 최고조에 달하게 되었다.

 

더욱이 프랑스군 대대장 몽끌레르 중령은

우리의 상식을 초월하는 진정한 군인으로서

모범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전 장병들이 엄동설한의 꽁꽁얼은 야지에서

구축한 진지는 그들이 흘린 땀만큼 피와 목숨으로

보답한다는 교훈을 얻게 해 주었다. 

 

방어작전시 승패는 누가 더 깊이 견고하게

진지를 구축하고 가용한 화력과 장애물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가에 달려있다는 것을

전투결과로서 보여주었다.

 

또한 중공군의 신호 및 연락수단이었던

피리, 괭과리. 북, 호각 등의 소음은 야간전투에서

심리적인 효과까지 충분히 달성할 수 있었으나

프랑스군 대대 어느 병사의 수동식 사이렌 작동으로

완전히 차단하므로서 예상치 못한 커다란 성과를 달성한 것은

전장에서 창의력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지평리전투 UN(미국)군 전승 충혼비

 

 

 

 

 

 

지평리전투 UN(프랑스)군 참전 충혼비

 

이 충혼비는 전적비 아래에

미국군과 프랑스군를 별도로 구분하여 설치되어 있었다.

 

 

 

 

 

 

전적비에 쓰여진 글

 

"공산군이 이 강산을 피로서 물드리고

조국의 가쁜숨이 경각을 다툴 때 16개국 UN군이

인류의 자유와 평화를 위하여 정든 고국산천을 등지고

수억만리 이역의 땅 우리나라에 파견되어

 

51년 2월 13일부터 동 15일 까지 이곳 지평리 전투에서

중공 제 39군 예하 115, 116, 119, 125, 126 사단 등

5개사단이 피에 굶주린 이리떼와 같이 인해전으로 덤빌 때

미 제2사단 예하 23연대 전투단과 불란서 대대가 이를 격퇴 하였으나

 

14일 재차공격으로 완전히 포위되어 통신이 차단되고 보급이 두절되어

탄환까지 제한된 판국에 백병전을 감행하여 사수하고

15일 공중보급과 기갑사단의 증원으로 5배나 되는 적을 격퇴하였으니

이 어찌 UN군과 우리의 영광이요 자랑이 아니랴,,,,,

 

실로 님들은 우리겨레를 살렸으니 여기 그 위대한 공훈을 흠망하여

그 감투정신을 자손 만대에 전함과 전몰장병 영령앞에 명복을 빌고자

이 비를 세우노라"

 

단기 4290년 7월 15일        제5사단 세움

 

 

 

 

 

 

 

개인적으로 이 지평리 전투에 대해서는

6.25 관련 자료나 각종 매체에서 본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 이 근처를 지나는 길에

잠시 시간내어 둘러보게 되었다.

 

지평리 전투에서 얻은 교훈과

이억만리에서 타국의 평화를 위해 장렬하게 전사하신

UN(미국군,프랑스군)군 장병들에게 감사의 메세지와 

삼가 명복을 기원드립니다.

 

 

 

 

 

 

 

지평리 전투 전적비 옆의

작은 공간에서 조금은 특이하고

의미있는 비를 발견하게 되었다.

 

'을미의병 기념비'였다.

 

 

 

 

 

 

 

이곳이 6.25의 지평 전투로만

기억되는 줄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또다른 역사적인 의미가 깊은 곳 인줄은 몰랐다.

 

 

 

 

 

 

을미의병 기념비 옆에는

정확한 내력을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의

아주 심하게 훼손된 돌로 만들어진 비도 있었다.

 

깊이 패여 훼손된 비의 상처는 아무래도

6.25 전투 당시의 총흔인듯하다.

 

 

 

오늘은

개인적으로 늘 알아보고 싶었고

늘 가보고 싶었던 경기도 양평의 지평리 전투의 

그 현장과 전적비를 소개해 드렸습니다.

 

너무 깊게 알려고 하면

머리가 아플 수 있으므로 

지평리 전투6.25 전쟁 당시

유엔군이 중공군을 상대로 대대적인 승리를 거둔

전투 정도로만 아시면 될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