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06. 21 화요일 오후....
지난 주말은 태풍 '메아리'의 영향으로
무척이나 많은 비와 바람이 동반되어
제대로된 외출도 못하고 그냥 그렇게 휭하니
시간만 잡아먹는 별로 유익하지 못한
주말 일상으로 보내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지난주 화요일 오후에 연가를 내고
지방에 볼일이 있어 내려가는 길에 잠시 들렀던
충북 제천의 천등산 박달재 옛길에서 만난 장승촌의
색다른 목조각품 및 장승들과 박달재의 가슴시린 이야기를
소개해 드리려 합니다.
"아이구 부끄러워라...."
아직은 미완성인 듯한
어느 여인의 나신 목조각품...
자리를 잡지 못해 일어서지 못하고
장승공원 입구 한켠에 가만히 누워서 쉬고 있네요^^
숲길로 형성된 박달재 목조각품과 장승공원은
이렇게 자연과 한몸이 되어
장승의 조각품의 몸을 휘감는 녀석도 있답니다.
"목이 길어 슬픈 짐승이여" 가 아닌 목조각 장승^^
긴목이 유난히 길어 한번 더 눈길이 가는
두손 고이 모은 여인네의 뒷태.
장승이 아닌 목조각품이라고 해야 맞겠죠..ㅎㅎㅎ
정상적인 목은 이렇겠죠...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이 여인들은 아무래도 박달재와 인연이 깊은
금봉낭자의 박달도령을 향한
애뜻한 마음의 표현이 아닌가 싶기도 하구요.
이렇게 각양각색의
목 조각품들이 산책로에 즐비하답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우뚝선 각종 장승군들....
두 아이의 칭얼대는 소리가 귓가에서 느껴지더이다 ...
다양한 목조각품과 장승들이
산책로 계단 좌우에 즐비하여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더군요.
이번엔
목뿐 아니라 팔까지 이렇게 늘어나 버렸네요...
소원을 너무 간절하고 애절하게 빌었나봐요~
언젠가 자리잡고
일어설 날이 있겠죠...
지금은 누워서 쉬고 있지만.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이 참 특이하더군요^^
많은 목조각품과 장승들을 직접 조각하신 스님인 듯....
작업장 근처를 배회하시는걸 보니.
정상 근처엔
박달도령과 금봉아씨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기리는 큰 동상이...
울고 넘는 박달재 -----
작사 반야월/ 작곡 김교성/ 노래 박재홍
천등산 박달재를 울고넘는 우리님아
물항라 저고리가 궂은비에 젖는구려
왕거미집을짓는 고개마다 구비마다
울었오 소리쳤오 이가슴이 터지도록
부엉이 우는산골 나를두고 가는님아
돌아올 기약이나 성황님께 빌고가소
도토리 묵을싸서 허리춤에 달아주며
한사코 우는구나 박달재의 금봉이야
박달재 하늘고개 울고넘는 눈물고개
돌뿌리 걷어차며 돌아서는 이별길아
도라지 꽃이피는 고개마다 구비마다
금봉아 불러보나 산울림만 외롭구나
박달재는 조선조 중엽까지 이등령이라고 불리어졌다.
이는 천등산 지등산이 연이은 嶺마루라는 뜻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곳에는 인등산도 함께 있어 天, 地, 人이
모두 갖추어진 유일한 곳이다.
박달재는 아득한 옛날 우리민족의 시원과 함께
하늘에게 天祭를 올리던 성스러운 곳이다.
박달은 순수한 우리말로 한자 자체가 가진 의미는 없다.
박은 밝다, 크다, 하얗다, 높다, 성스럽다 등의
여러가지 의미를 갖고 있는데
이것이 한자어로 차용이 되면서 <朴, 白, 弗, 不, 發>등으로 쓰였다.
달(達)은 산이나 언덕등을 나타내는 알타이어어의 고어이며
단군신화 속에서 나타나는 아사달, 금미달 등이 그것이며,
특히 고구려에서는 지명에 많이 쓰였다.
그러므로 박달은 白山으로 풀이 되는데
이 백산은 태백산, 백두산등과 동일한 의미와 기능을 갖고 있다.
단군이래로 우리민족이 천제를 올리던 백산은 여러곳에 있다.
그리고 그 산들중의 하나가 바로 이곳에 있는 천등산 박달재인 것이다.
참 단아한 포즈입니다.
도포자락과 치맛자락을 휘날리는
박달도령과 금봉아씨의 몽환적인 사랑이야기를
기리는 소중한 상징물이네요.
영남의 과거도령 박달은 과거 합격이라는 청운의 꿈을 갖고
한양을 찾아가다 평동마을의 한 농가에서 유숙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여난을 조심하라는 가훈을 가슴에 지닌
박달도령의 늠름하고 준수한 태도에
그집의 딸 금봉이는 그만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박달도령도 금봉이의 절절하고 연연한 자태에 넋을 잃고 말았으니,
양인심사는 양인지라.
뜻과 뜻이 맺어지고 마음과 마음이 이어져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달빛이 호젓한 밤 두 청춘남녀는 사랑을 맹세하고
장래를 약속하며 밀회로 밤을 새웠다.
그러나 이들은 이별이란 말 아래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정성을 다해 몰래싸준 도토리묵을 허리춤에 달고
박도령은 눈에 어리는 금봉이의 모습을 애써 지워가며
이등령 아흔 아홉구비를 꺽어돌며 눈물을 뿌렸다.
한양에 도착한 박달이는 만사에 뜻이없고
오로지 자나깨나 금봉이 생각뿐이었다.
연연한 그리움을 엮어 벽에 걸고 과거를 보았으나 결과는 낙방이었다.
몇일을 두고 고민하는 날이 계속 되었다.
그리움 내키는대로 평동을 가자니
낙방의 초라한 모습을 금봉이에게 보일 수 없어 가슴을 태웠다.
가락지...
두사람의 언약을 의미하겠죠....
한편 박달을 보낸날부터 성황님께 빌고 빌기를 석달열흘,
끝내 소식이 없자 금봉이는 아흔 아홉구비를
그리운 박달의 이름을 부르며 오르고내리다
마침내 실신하여 상사의 한을 안고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박달은 금봉이의 삼우날 평동에 도착하여
금봉이의 허망한 죽음앞에서 실의와 허탈감에 그만 의식을 잃고 말았다.
얼마나 지났을가?
눈을 뜬 박달의 앞에 금봉이가 애절하게 박달을 부르며 앞으로 지나갔다.
앞서가던 금봉이가 고개마루 정상벼랑에서 박달을 부르며
몸을 솟구치는 찰라,
박달은 금봉아! 한마디를 부르며 금봉이를 잡았으나
이는 허상일뿐 벼랑에서 떨어지는 몸이 되었다.
봄이면 두 남녀의 이루지 못한 애절한 사랑을 대변하듯
연붉은빛 진달래 꽃이 아름답게 피고 진다.
박달재 정상에 있는 고려 명장 '김취려'장군 대첩비
1216년 고려의 김취려<金就礪> 장군이
거란의 대군을 여기 박달재에서 물리쳤고
1268년 고려의 이 고장 별초군<別抄軍> 또한
여기서 몽고의 군사를 막아냈다.
영남땅 도령 박달과 이 재 아랫마을 처녀 금봉의 사연이 전해오기도 하고
박달은 태고적부터의 유래를 지닌 白山의 뜻이라고도 하나
이 오랜일들을 오늘날 뉘 소상히 알랴.
박달재 정상의 휴게소에선
우리의 가요 '울고넘는박달재' 가 연거푸 울려 퍼지더군요.
그런 와중에
이런 해학적이며 특이한 목조각품의 장승들이 즐비하여
오가는이들의 눈길과 발길을 붙잡기도 하더이다.
두손?
무엇을 의미할까요?
소원성취를 비는 두손이겠죠?
통나무를 이용해서
너무나도 재밌게 표현한 작품이죠^^
수염과 옷고름을 보세요.
몸체와 달리 조금은 비대칭인 손도 그렇구요..
순수하면서도 정말 환하게 한번쯤 웃을 수 있는 작품이죠.
조금은 서민적인 요녀석은
중앙고속도로 하행선 단양휴게소를 지키는 녀석입니다.
휴게소 매점앞에도
이런 다양한 목조각품의 장승들이 상당히 많더이다.
상당히 힘이 넘쳐나는(?)
우락부락한 남근을 닮은
목조각품이네요..ㅋㅋㅋ
나무의 나이테와 목조각품 특유의
작업도구의 흔적이 도리어 정겹게 느껴지네요.
아래위로 두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는
조금은 기이한 돌 하루방을 닮은 작품...
젖 달라고 칭얼대는 두 아이의
보챔에도 환하게 미소짖는 엄마의 밝은 모습이
단연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이분도 단양휴게소 야외공원을
자리잡고 계신분이랍니다^^
참 단순하면서도 한번정도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작품...
나무의 선과 결을 그대로 잘 살렸더군요.
참 선이 곱더군요...
섬세함과 정교함이 돋보이는 작품이죠..
이상과 같이
오늘은 충북 제천 천등산 자락의
박달재 장승 또는 목조각품 등을 둘러봤습니다.
박달도령과 금봉아씨의 아련한 전설이
지금 이 시간까지도 고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유서깊은 천등산 박달재....
그 실체보다 대중가요 노래로 더 많이 접했던
지난날의 기억들이 새롭습니다.
이렇게 태풍이 몰아치고
많은 비가 내리는 유월도 서서히 저물어가는
마지막주를 맞이하네요.
내고장 칠월엔 청포도가 익어간다는
파란 칠월이 이젠 눈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남은 유월 잘 마무리하시고
칠월엔 유월보다 좀더 알차고 유익한 일상들로
가득 채워나가시길 기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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