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답사기

삼일절날 방문한 하얀 겨울빛의 여주 명성황후 생가...

금모래은모래 2016. 3. 3. 06:00

 

 

 

"내가 이 나라의 국모다"

 

 

시리도록 파란 하늘의 삼일절 오전

여주의 명성황후 생가를 방문하고 왔습니다.

 

 

가까이 살면서도 막상

자주 찾아보기 쉽지 않은곳인데

하얀 겨울날에 방문한 그곳엔 아직은

봄기운보다는 끝자락의 잔설이 그윽했습니다.

 

 

때마침 삼일절 기념으로 개최되는

여주출신의 독립유공자 관련 사진전도

개최되어 둘러보고 왔구요. 

 

 

 

명성황후 생가는

영동고속도로 여주 나들목을 나와서

우회전하자 마자 3분여 거리에 자리잡고 있으며

여주 첼시 프리미엄 아울렛 입구의 반대쪽으로 들어가면

생가에 쉽게 도착할 수 있습니다.

 

 

조선 고종황제(재위 1863~1907)의 비이자

조선의 마지막 국모인 명성황후 민씨(1851~1895)가

태어나서 8세까지 살던 집입니다.

 

 

 

 

 

이틀전에 내린 눈이

다 녹은줄 알고 방문했는데

날씨가 차가워 많이 남아 있더군요.

 

 

 

 

 

명성황후는

민치록의 딸로 철종 2년(1851)에 태어나

16살에 고종의 왕비가 되었습니다.

 

 

그 후 정치에 참여하여 개화정책을 주도해 나갔으나,

고종 32년(1895) 을미사변 때 일본인에 의해 살해되었고

능은 청량리에 있었다가 1919년 고종황제가 세상을 떠나자

홍릉으로 함께 합장되었습니다.

 

 

명성황후 생가는 숙종 13년(1687)에 처음 지어진 집으로,

그 당시 건물로는 안채만이 지금까지 남아

보존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특히 명성황후의 생가는

솟을대문을 지나면 ㅡ자형 행랑채가 먼저 보이고,

안마당을 가운데 두고 ㄱ자형 문간채와 안채가 ㅁ자형을 이루며

그 옆에는 ㅡ자형 별당이 배치되어 있더군요.

 

 

명성황후의 생가라는 역사적인 가치 뿐만 아니라

조선 중기 살림집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전통가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저만치 먼저 오신 방문객 몇분이

안채를 둘러보고 있었습니다.

 

 

 

 

 

매번 올때마다 느꼈지만

이곳 명성황후 생가에서는 뭔가 모르게

마음이 아프기만 하더라구요.

 

 

유난히 삼일절이라서

더 그랬던것 같기도 하구요.

 

 

 

 

 

하얀 눈의 겨울날의 방문은

저도 처음이었습니다.

 

 

손이 시리도록 차가운 날씨였습니다.

아침 기온이 영하 8도까지 내려갔었거던요.

 

 

 

 

 

안채와 작은 담을 사이에 둔 별당으로서

명성황후가 어린시절 글 공부하던

곳이라고 전하더군요.

 

 

 

 

 

특히 별당은

초가지붕이었습니다.

사실에 고증한건지는 모르겠지만

안채와는 다른 느낌입니다.

 

 

 

 

 

다시 안채쪽으로 나왔습니다.

마당가의 하얀 눈이 정겹기도 하고

안스럽게 느껴지기도 하는 묘한 기분이

서로 교차하였습니다.

 

 

 

 

 

별당과 반대편인 안채옆을 둘러보았습니다.

화장실 끝에 매달린 고드름이 유난히 눈에 들어옵니다

 

 

 

 

 

아스라한 겨울풍경도 이쁘구요.

 

 

 

 

 

약간 뒷편에서 바라본 안채의 모습입니다.

문화재 보호차원에서 CCTV가 여러 각도에서

잘 돌아가고 있더군요.

 

 

하얀 겨울나라의 그곳엔

눈에 보이지 않는 슬픔의 역사가

쓰라린 가슴에 내려앉는 기분이었습니다.

 

 

 

 

 

생가를 나서면서 바라본

삼일절의 하늘은 무척 감사하기만 했습니다.

 

 

우리민족의 지난날의 아픈 역사를 대변하듯

주렁 주렁 매달린 고드름 사이로 이제는

찬란한 기운의 태양이 솟아 오르구요.

 

 

 

 

 

나즈막한 야산 아래 자리를 잡은 이곳

명성황후 생가의 겨울빛 풍광은 

아스라하기만 했습니다.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더 차갑게 느껴지기도 하고

평온한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담밖에서 까치발로 넘어다 본 별당의 모습입니다.

싱그러운 여름날엔 또 다른 풍광일듯 합니다.

 

 

문득 낭낭한 소리로 글읽던 어린 명성황후가

슬그머니 쳐다볼것 같은 기분이더군요.

 

 

 

 

 

이곳 명성황후 생가를 방문하게 되면

여느 문화재 탐방때와는 다르게

더 숙연해 지더군요.

 

 

 

 

 

국력이 약했던

당시의 나라잃은 설움이

주마등처럼 생각나기 때문인가 봅니다.

 

 

 

 

 

생가 맞은편의 명성황후 기념관에서는

삼일절을 맞이하여 여주 출신의 독립유공자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입장권 1,000원과

주차비 1,000원으로 들어와서

생가뿐 아니라 기념관에서 사진전까지

보게되는 횡재를 했답니다.

 

 

 

 

 

여주지역 출신의 독립유공자가

이토록 많은줄 이번 사진전을 통해서

처음 알았습니다.

 

 

놀라운 사실입니다.

 

 

사진전은 3월 31일까지 계속된다고 하니

참고하시면 도움이 될것 같습니다.

 

 

 

 

 

기념관 앞의 연못...

 

 

이러다가 곧 봄이 오겠죠^^

 

 

 

 

 

명성황후 기념관에서 나와 생가 옆에 조성된

초가집인 민가쪽을 살펴보았습니다.

 

 

 

 

 

하얀 겨울날에 만나는 초가는

방문객의 발길을 또 다시 붙잡았습니다.

 

 

 

 

 

더구나 눈이 녹고 있는 즘이라서

초가지붕 끝자락엔 고드름이 주렁 주렁했거던요.

날씨가 많이 춥긴했지만 그 자체의 운치에

너무나도 만족스런 방문이었습니다.

 

 

 

 

 

"주모... 여기 막거리 한사발 부탁하오"

 

 

그런 분위기였지만 생가안쪽 보다는 확실히

생기가 도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삼일절날 오전 방문이라서

개인적으로 더 의미있는 시간이었구요.

 

 

명성황후에 대해서는 사극으로 본 기억밖에 없지만

구한말 어수선한 정국의 병약한 우리나라의

현실들을 되새김할 수 있더군요.

 

 

다시는 재현되지 말아야 할 파렴치한 작태를

가슴속으로 기억하며 삼일절날 명성황후

생가 방문을 마무리하였습니다.

 

 

그 어느때 보다도 훨씬 더 의미있는

하얀 겨울날의 여주 명성황후 생가 방문은

오래도록 기억될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