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답사기

[여주 영릉은 두곳이다] 효종대왕릉 영릉재실에서 보물을 발견하다...

금모래은모래 2016. 2. 5. 06:00

 

 

 

흔히 여주의 영릉이라고 하면

그저 세종대왕의 릉만 생각하게 되지만

자세히 알고보면 그 영릉엔 두개의 영릉이 있다.

 

세종대왕의 영릉(英陵)과

효종대왕의 영릉(寧陵)이 바로 그것이다.

 

오늘은 한글이 같은 그 두개의

영릉이 주제가 아닌 효종대왕릉 입구의

재실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물론 기존에 효종대왕릉을 소개하면서

간략하게나마 소개해 드렸지만 조선왕릉 최고의

재실로 인정되어 보물로 지정된 여주 효종대왕릉의

겨울날의 재실 모습을 살펴볼까 합니다.

 

 

 

요즘 효종대왕릉 입구는

진입도로 공사가 한창 진행중이었다.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하는건지

하여간 원형을 훼손하는 공사가 아니길...

 

 

 

 

500원의 입장권을 발매하고 들어서면

보이는 이곳이 바로 효종대왕릉의 재실이다.

물론 500원으로 입장하게 되면 이곳과 세종대왕릉을

전부 다 둘러볼 수 있다.

 

그럼 먼저 두 영릉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세종대왕과 소헌왕후의 영릉(英陵)

당초 영릉은 1446년(세종 28) 소헌왕후가 죽자

경기도 광주(廣州) 서강(西岡)에 쌍실의 능을 만들고

그 우실(右室)은 왕의 수릉(壽陵)으로 삼았다가

1450년(문종 즉위년) 세종이 죽자 합장하였다.

그 후 1469년(예종 1)에 여주로 옮겼다.

 

효종대왕과 인선왕후의 영릉(寧陵)
조선 17대 효종(재위 1649∼1659)과 부인 인선왕후의 능이다.

처음엔 건원릉의 서쪽에 있었으나 석물에 틈이 생겨

현종 14년 (1673)에 여주 영릉 동쪽으로 옮겼다.

 

 

 

 

오늘 중점적으로 소개해 드릴곳인

조선 제17대 효종(孝宗)과 인선왕후(仁宣王后) 장씨의 능인

영릉(寧陵)에 제사하기 위해 1674년에 세운

바로 그 재실(齋室)의 외관이다.

 

 

 

 

보물 제1532호 여주 효종 영릉재실....

재실 자체가 보물인것이다.

 

 

 

 

안으로 들어가면서 살펴 보았다.

 

우리집에서 멀지 않아

해마다 한두번씩 방문하는 곳이지만

올때마다 기분은 늘 새롭다.

 

 

 

 

이곳 재실은 재실이라는 생각보다는

그냥 오래된 고택같다는 느낌이 많이 든다.

건축물 자체가 상당히 안정감이 있어서 그건것 같다.

 

 

 

 

조선시대 고건축에 대해서 자세히 소개하면

저도 머리 아플것 같아서 그냥 간략하고 둘러보는게

오히려 맘은 편할것 같다.

 

예전엔 가끔 사진 전시회도 개최되더니

요즘엔 별다른 이벤트는 없고 항시 개방되어

효종대왕릉을 찾는이들이 먼저 이곳을

우선 방문하고 능으로 올라간다.

 

 

 

 

누가 감히 재실이라고 생각하겠는가?

그냥 평범한 조선시대의 고택이구나 싶을 정도로

단아한 기와집인양 하다.

 

 

 

 

그곳에서 귀한 나무 한그루를 만날 수 있다.

우리나라 최고의 회양목이라고 칭하는 바로 그

여주 영릉의 회양목이다.

 

수령이 300살이나 된다고 하며

천연기념물 제459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회양목은

화단가에 가지런히 앉아 있는 동그란 정원수를

생각하게 되지만 이곳의 회양목은 분명

제법 큰 나무 모양의 회양목이다.

 

 

 

 

회양목 아래에서 재실을 바라보면

이런 형국이다.

 

 

 

 

효종대왕릉의 재실은 조선시대

건축학적으로도 엄청 아름답다고들 평가한다.

 

담장 안에 둔 굴뚝과 위까지 끌어올린 심벽,

그리고 옆쪽의 안향청의 독특한 건축방법 등은

그 어느 고택보다도 훌륭하다.

 

하여간 전문가는 아니지만

오래된 건축물치곤 무척 잘 보존되고 있어

그저 다행스런 생각이 앞서기만 한다.

 

 

 

 

이곳 재실엔 이렇게

담 울타리가 이쁘게 만들어져 있다.

최초부터 있었는지 아니면 그 후에 담을

만들었는지는 정확하게 알수가 없다.

 

 

 

 

보물인 재실 앞 마당의 천연기념물...

참 아름다운 조화인듯 하다.

 

여주 효종대왕릉 재실은 보물 제1532호다.

재실은 능을 수호하고 관리를 담당하는 참봉이 상주하는 곳이며,

제관들의 휴식, 제수 장만, 제기 보관 등의 제사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능의 부속건물이다.

 

이곳의 재실은 안향청, 집사청, 전사청,

참봉청, 행랑, 침가(砧家)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안향청, 집사청(현 제기고), 참봉청(현 재실),

제기고(현 행랑채부속동), 행랑만이 남아있다.

 

 

 

 

수령 500년의 노거수 느티나무는

저곳에서 말없이 모든것을 지켜봤을것 아닌가?

일제강점기의 안타까움과 심지어 6.25까지...

우직한 문지기처럼...

 

특히나 북벌정책을 호령하던

효종대왕릉의 입구에서...

 

문득 아산 공세리 성당의

꿈틀거리는 뿌리의 우직한 문지기

팽나무가 생각났다.

 

 

 

 

노거수 느티나무의 늙은 이끼는

세월을 짊어진듯 오늘도 변함없이

그렇게 늙어만 가고 있었다.

 

 

 

 

이곳 재실은 왕릉의 입구에 자릴 잡아

방문객들이 왕릉을 방문할때 먼저 둘러보고

저 문을 통해서 효종대왕릉으로 향한다.

 

 

 

 

여주 영릉의 재실은 두 번의 이건 과정을 거쳤지만

모두 구 건물을 철거하여 이건함으로써 1659년 초창시의

모습을 대부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전사청과 침가(砧家)가 소실되고 일부 실들의 기능이 변하였지만

안향청(安香廳), 집사청, 참봉청, 행랑, 제기고 등의 기본 배치 구성 등은

『능제규례(陵祭規例)』의 「재실지도(齋室之圖)」와 일치하고 있다고 한다.

 

 

 

 

제사에 사용되는 제기를 보관하던 제기고라고 한다.

제례의복도 보관했다고 전한다.

 

 

 

 

이런 자물쇠가 좋다.

이런 투박스러움이 좋다.

고택이나 문화재를 방문해야만

느낄 수 있는 감성...

 

 

 

 

안향청...

 

 

 

 

바로옆 세종대왕릉엔

늘 많은이들이 방문하지만 이곳

효종대왕릉엔 조용한 편이다.

 

어쩌면 그게 이곳 방문의 매력일 수도 있다.

 

 

 

 

무엇하나 소홀한게 없다.

꾸불꾸불한 그대로의 형태를

잘도 살렸다.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조선 왕릉의 재실은

일제강점기와 6.25를 거치면서 대부분 멸실되고 원형이 훼손되었으나

영릉 재실은 기본 형태가 가장 잘 남아있고, 간결하고 소박하면서

짜임새 있는 건물의 구성은 조선 왕릉 재실 건축의 표본이다.

 

특히 공간구성과 배치가 뛰어나

대표적인 조선시대 재실 건축으로

학술적·역사적 가치가 높이 평가된다.

 

 

 


 

다 둘러보고 나와서

다시금 바라본 여주 효종대왕릉 재실...

 

주변 환경이 유난히 뛰어나

문화재 보존측면의 가치뿐 아니라

조선시대 정원문화 조명에도 상당히

귀중한 자료인듯 하다.

 

늙은 느티나무와 노거수 향나무

그리고 세월을 집어삼킨 거목의 회양목이

하나의 그림이 되었다. 

 

 

  

 

재실을 둘러본 방문객들은

어김없이 효종대왕릉으로 향하고 있다.

 

저는 여기서 발길을 돌렸습니다.

효종대왕릉을 방문한게 아니고 재실을

방문했기 때문에 말입니다.

 

가깝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다시금 방문이 가능하기에...

 

겨울날의 왕릉과 재실은

아무래도 푸르른 여름날의 그것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이지만 그나마

의미를 부여하는 측면에서는

더 차분한 기분이었습니다.

 

 

내일부터 5일간의

설명절 연휴가 시작됩니다.

고향을 향하는 마음이 설레이고

아무리 급하더라도 안전운전하시고

모처럼 모인 가족분들과 행복하고

알차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