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 전철 신원역에서
인근에 위치한 형제봉 등을 산행하려면
꼭 지나치게 되는곳이 있다.
몽양 여운형 선생의 기념관이다.
입장권 1,000원이며
기념관과 생가지에 복원된
생가건물들을 둘러볼 수 있다.
전철역에서 내린 후
산행지 초입에 위치한 이곳을
의외로 많은 등산객들이 둘러보고
등산을 시작한다고 한다.
몽양 여운형 선생의 기념관과
복원된 생가지를 둘러보겠습니다.
몽양 여운형 그는 누구인가?
백과사전의 도움을 받아 찾아보았습니다.
여운형(呂運亨, 1886년 5월 25일 ~ 1947년 7월 19일)은
9월부터 1946년 2월까지 조선인민공화국의 부주석을 지내기도 했다.
구한 말 기독교의 평등 사상을 수용하여 노비들을 해방시키고,
교육·계몽 활동을 하다가 1907년 대한협회에서 주최하는 강연회에서
안창호(安昌浩) 연설에 감화되어 독립 운동에 투신했다.
외교관으로는 중국에 건너가 신한청년당 당수로 활동하여
1919년 3.1 만세 운동을 기획하는 일을 주도하였고,
직접 일본을 찾아 담판을 짓기도 했다.
한국노병회, 시사책진회, 중한호조사 결성에도 참여했고,
개조파로 활동했으나 임정을 떠났다.
이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러시아를 오가면서
중국 혁명 운동과 반제국주의 운동에 활동하였다.
국내로 송환된 이후에는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동아일보의 상해 주재 촉탁 통신원과 타스 통신사 직원으로 지냈으며,
국내에서는 1933년~1936년까지 조선중앙일보사의 사장을 지냈다.
미군정기 군정청 체육부장을 지내기도 했다.
1944년부터는 비밀 지하 독립 운동 단체인 건국동맹과 농민동맹을 결성,
해방 뒤 1945년 8월 안재홍, 박헌영 등과 함께 건국준비위원회,
9월 조선인민공화국을 결성하여 혼란 수습과 치안 유지 등의 활동을 했다.
1946년부터는 김규식, 안재홍과 함께 통일 임시 정부 수립을 위해
좌우 합작 운동을 전개하였으나 이를 반대하는
좌·우익 양측으로부터 테러를 십여 차례 당했으며,
좌파 단체의 주도권을 놓고 박헌영 등과 경합했다.
1947년 7월 19일 서울 혜화동 로터리에서 차량으로 이동 도중,
백의사의 집행부장 김영철이 선정한 한지근(본명 이필형)외
다섯 명의 저격을 받고 암살되었다.
2008년 다시 건국훈장 대한민국장(훈 1등)을 추서했다.
독립운동가 겸 정치인 여운홍의 친형이고,
철학자 박찬기의 외삼촌이다.
경기도 양평 출신이며, 호는 몽양(夢陽)이다.
깜놀했습니다...
밀납인형이 얼마나 정교한지
진짜 사람인줄 알았습니다.
부용산과 형제봉 등
전철 용문행의 신원역에서
걸어 올라갈 수 있는 몇개의 등산시
스쳐지나게 되는 몽양기념관..
세번째 방문후에야
겨우 포스팅하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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