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의 고장 영주의
순흥향교와 단종 복위를 꿈꾸던 금성대군의
아련한 이야기가 전해지는 금성단을 다녀왔습니다.
순흥향교 주차장에서 바라본
향교를 오르는 돌계단과 고목입니다.
순흥향교..
기와로 만들어진 담장이 참 이색적이었습니다.
아직도 향사가 진행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파란 하늘과 어우러진
향교를 오르는 돌계단과 고목...
소수서원 앞의
금성대군의 신단입니다.
뭔가 모르게 숙연한 분위기가 흘렀습니다.
단종 복위운동을 펼치던
그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고....
금성대군 그의 삶은 전설처럼만...
금성대군
그는 누구인가?
금성대군...
이름은 유(瑜).
세종의 여섯째 아들이며,
어머니는 소헌왕후(昭憲王后) 심씨(沈氏)이다.
단종의 숙부이다.
1433년(세종 15) 금성대군에 봉해지고,
1437년 태조의 여덟번째 아들인
방석(芳碩)의 후사(後嗣)가 되었다.
1452년 어린 조카인 단종이 즉위하자
형인 수양대군과 함께 좌우에서 보필할 것을 약속했다.
그러나 수양대군이 정권탈취의 야심을 가지고 김종서 등을 제거하자,
형의 행동에 반대했다.
1455년(단종 3) 모반혐의로 삭녕에 유배되었고,
다시 광주(廣州)로 옮겨졌다.
1456년(세조 2) 성삼문·박팽년 등 사육신의 단종복위운동이 실패하자,
이에 연루되어 경상도 순흥으로 유배지가 옮겨졌다.
이곳에서 부사 이보흠(李甫欽)과 함께 고을 군사와 향리를 모으고
도내의 사족(士族)들에게 격문을 돌려서
의병을 일으켜 단종복위를 계획했으나,
거사 전에 관노의 고발로 실패하여 반역죄로 처형당했다.
1738년(영조 14) 신원(伸寃)되었다.
영월 창절사(彰節祠), 순흥 성인단(成仁壇), 청안 향사(鄕祠)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정민(貞愍)이다.
이렇게
경북 영주시 풍기의
순흥향교와 금성대군의 신단을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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