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답사기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만난 국보 단양 적성비 ...

금모래은모래 2017. 10. 11. 19:00


 

 

 

국보 제198호

단양 신라적성비를 기억하시나요?

 

 

사적 제265호인 충북 단양군에 위치한

신라시대에 조성된 적성산성과

산성내의 단양 신라적성비를

둘러보고 왔습니다.

 

 

적성과 신라적성비를 둘러볼때

가장 쉬운 접근 방법은 중앙고속도로

상행선 단양휴게소내에서 진입하는 방법입니다.

 

 

휴게소 내의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뒷문으로 걸어서 바로 산성으로 진입할 수 있거던요.

 

 

 

 

요렇게 안내간판이 있는데

중앙고속도로 상행선 단양휴게소 내의

좌측과 우측 각 방향에서 산성으로 진입이 가능하도록

별도의 작은 출입문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뒷문을 나가서 고개를 들면

바로 이렇게 단양적성이 눈에 들어 옵니다.

 

 

 

 



 

오르기 전에 안내문도 살펴 보구요^^

 

 

 

 

 

산성을 오르는 길목엔

호두가 토실 토실 익어가고 있더군요.

 

 

 

 


 

심하지 않은 경사로를 따라서

10여분 정도면 올라갈 수 있는 곳입니다.

 

 

 

 


 

계단을 다 오르니 바로 저만치

정자각처럼 생긴 그 무엇인가가 보입니다.

 

 

 

 


 

국사책에 나오던

바로 그 단양 신라적성비입니다.

 

 

국보 제198호...

 

 

 


 

 

정면에서 다시 바라보고...

 

 

 

 


 

단양 적성비(국보 제198호)

 

충북 단양군 단성면 하방리 산3-1

 

 

신라시대의 비로 신라 진흥왕 때 건립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신라가 고구려 영토인 단양 적성일대의 영토를 편입한 것을

기념하여 세운 전승비겸 척경비이다.


자연석을 사용했는데 비면이 깨끗하고 글씨가 뚜렷하다.

가로세로 맞춘 글자새김이 정교하고,

그 가운데 288자를 알아볼 수 있다.

 

 

전쟁에서 공을 세운

적성출신의 장군 등을 포상하면서

그와 같은 충성을 지역민들에게

유도하고자 하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새로 복속된 고구려인의 민심을 안정시키기 위해

신라의 율령제도, 즉 형벌과 행정법규에 대해 언급하고 있어

당시의 법률제도를 알수 있는 중요한 비석이다.

 

 

 

 


 

상세하게 한번 더 찾아보자..

 

 

성재산 적성산성 내에 위치한 신라시대의 비로,

신라가 고구려의 영토인 이 곳 적성을 점령한 후에

민심을 안정시키기 위해 세워놓은 것이다.

 

1978년에 30㎝ 정도가 땅속에 묻힌 채로 발견되었는데,

비면이 깨끗하고 글자가 뚜렷하다.

 

 

비(碑)는 위가 넓고 두꺼우며, 아래가 좁고 얇다.

윗부분은 잘려나가고 없지만 양 측면이 거의 원형으로 남아있고,

자연석을 이용한 듯 모양이 자유롭다.

 

 

전체의 글자수는 440자 정도로 추정되는데,

지금 남아있는 글자는 288자로 거의 판독할 수 있다.

글씨는 각 행마다 가로줄과 세로줄을 잘 맞추고 있으며,

예서(隸書)에서 해서(楷書)로 옮겨가는 과정의

율동적인 필법을 보여주고 있어 서예 연구에도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비문에는 신라의 영토 확장을 돕고 충성을 바친

적성인의 공훈을 표창함과 동시에 장차 신라에 충성을 다하는

사람에게도 똑같은 포상을 내리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를 통해 신라의 형벌 및 행정에 대한 법규인

율령제도 발달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노역체제, 재산 분배에 관한 국법이 진흥왕 초반에 마련된 것과

적성 지방에 국한된 관습을 법으로 일반화하고 있는 사실 등이 그러하다.

 

 

비문 첫머리에 언급된 10인의 고관의 관등과

『삼국사기』의 내용을 견주어 살펴볼 때,

비의 건립은 진흥왕 6∼11년(545∼550) 사이였을 것으로 보인다.

북방공략의 전략적 요충지인 적성지역에 이 비를 세웠다는 것은

새 영토에 대한 확인과 함께 새로 복속된 고구려인들을 흡수하려는

국가의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비록 순수비(巡狩碑:왕이 직접 순행하며 민정을 살핀 기념으로 세우는 비)는 아니지만,

순수비의 정신을 담고 있는 척경비(拓境碑:영토 편입을 기념하여 세운 비)라는

점에서 큰 가치를 지닌다.

 

 

- 다음 문화유산 발췌 -

 

 

 

 

 


 

먼저 둘러보신 다른 가족분들이

다시금 단양휴게소로 내려가고 있네요.

 

 

 

 


 

그리고 저만치 내려다 보이는

단양휴게소와 중앙고속도로 그리고

중앙선 철도과 소백산 자락이 어렴풋이

시선에 들어옵니다.

 

 

 

 


 

단양적성비를 뒤로하고

산성을 한바퀴 둘러볼 요량으로

다시금 출발...

 

 

 

 


 

단양적성의 안쪽엔

이렇게 운치있는 솔밭길이

방문객들의 휴식을 도와주고 있더군요.

 

 

 

 


 

나무 그늘에 앉아서 쉬기를 반복하며

쉬엄 쉬엄 둘러 보는 느림의 미학으로 거닐다 보면

어느순간 눈앞에 떡하니 펼쳐지는 단양적성....

 

 

 

 


 

단양 적성(사적 제265호)

 

충북 단양군 단양면 하방리 산3-1

 

 

삼국시대의 산성이다.

토석으로 기반을 다진 후

자연석 등을 쌓아 견고하게 만들었다.

 

 

삼국시대 산성으로는

비교적 큰 규모로 약 900m에 달하나,

대부분이 무너지고 일부만 남아 있다.

 

한강을 중심으로 신라, 고구려의 세력다툼을 보여주는

비문과 토기, 기와조각과 고려시대 유물 등이 발견되었다.

신라의 축성술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 다음 문화유산 발췌 -

 

 

 

 


 

오래전에도 이곳에서

인증샷을 남겼던 기억이 난다.

 

 

거의 9년 정도의 세월이 흐른것 같은데...

 

 

 

 


 

단양 적성은

단양 성재산에 있는 돌로 쌓아 만든 산성이다.

 

주위가 약 900m이나 대부분 붕괴되고,

북동쪽에는 안팎으로 겹쳐 쌓은

부분의 안쪽 성벽이 일부 남아있다.

 

 

성의 남서쪽, 남쪽, 동남쪽의 3곳에

문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성벽의 절단부가 있다.

북쪽은 남한강과 가파른 절벽의

자연적인 지리조건을 최대한으로 이용하고 있다.

 

 

1978년 성내에서 적성비가 발견되었는데

이를 통해 신라와 고구려의 세력관계 변동을 알 수 있다.

비석외에 삼국시대의 토기조각과 기와조각도 발견되고 있으며,

고려시대의 유물도 있어 대략 고려 후기까지

오늘날의 단양지방을 다스리는 읍성의 구실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축성방법이 매우 견고하게 되어있어,

신라의 성 쌓기 기술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 다음 문화유산 발췌 -

 

 

 

 


 

이제 다시금 원래의 위치로 돌아가는 중...

산성 자체가 그렇게 크고 웅장하지는 않기 때문에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40분 정도면 전체를 다 둘러볼 수 있을 듯...

 

 

 

 


 

지나온 길을 다시금 돌아보면

이렇게 이쁜 소나무 한그루와 더불어

산성 복원공사가 한창이더군요.

 

 

 

 


 

저만치 또 다른 가족분들이

단양 적성비만 둘러보고 다시금

고속도로 휴게소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역사적인 가치가 높아

국보로 지정까지 된 단양 신라적성비...

 

 

방문객들의 접근성이 뛰어나다는 사실만으로도

아주 멋진 탐방 코스라고 생각됩니다.

 

 

어느 가을날 단양휴게소를 방문하시거던

단양 적성을 거닐며 단양 신라적성비도 둘러보고

신라시대로의 아날로그 여행을 슬그머니

즐겨보는 것도 좋을듯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