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답사기

고구마 최초 전래자 문익공 조엄 선생 묘역을 다녀오다...

금모래은모래 2017. 5. 2. 05:00

 

 

 

 

 

고구마...

 

 

평소 간식으로

참 좋아하는 구황작물이다.

 

 

어린시절 시골에서 자랄때

고구마 농사를 스무가마니 정도나

했으니 고구마에 대한 아련한 추억이

그 누구 보다 많은게 사실이다.

 

 

뜬금없이 왠 고구마 이야기냐구?

 

 

오늘 소개해 드릴 내용이

바로 고구마 이야기이기에 ㅋㅋ

 

 

먹고 살기 힘들었던 조선시대에

일본에서 우리나라에 최초로 고구마를

들여온 문익공 조엄선생의 묘역과

기념관을 다녀왔다.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에 위치한

문익공 조엄 선생의 기념관에 도착했다.

 

 

물론 이곳을 방문하고자 했던건 아니고

주변을 지나다 우연히 알게되어

문득 방문하게 되었다.

 

 

 

 

 

백과사전에서 조엄 선생을 찾아보았다.

 

 

자는 명서, 호는 영호, 본관은 풍양으로,

상경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1751년 정시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라 이조판서를 지낼 때까지 청렴한 관리로서

항상 백성들 편에 서서 최선을 다한 인물이다.

 

 

관계에 있으면서도 문장에 뛰어나

해사록 등 저서를 남기고 있으며 경제가로서

세곡수송에 민폐를 덜어줌으로서 국고에 충실을 기하기도 했다.

 

 

1763년(영조 39) 통신사로 일본에 갔을 때

대마도에 둘러 고구마의 종자를 가져 왔으며,

그 보장법과 재배법을 익혀 최초로 고구마 재배를 실현 시킴으로써

흉년이 들었을 때 백성들을 구황하는데

큰 업적을 남긴 인물이다.

 

 

 

 

 

조엄 기념관은 별도의 입장료는 없다.

 

 

무료 입장이며

문화해설사도 예약이 가능하며

월요일은 휴관이라고 한다.

 

 

그럼 기념관 안으로 들어가 보자.

 

 

 

 

 

기념관 안으로 들어서는데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건 당연히

고구마에 대한 다양한 정보와 이야기다.

 

 

조엄 선생의 업적 가운데

고구마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중요한 업적인가 보다.

 

 

 

 

 

선생의 다양한 업적이

가지런하게 정리되어 있다.

 

 

항상 백성들 편에 서서 일한

청렴한 관리였다고 한다.

 

 

 

 

 

학창시절에 국사책에서 그저

고구마를 전래한 사람이 조엄이라는

이름 석자만 기억할뿐인데 이렇게

찾아뵐 줄이야.

 

 

 

 

 

평소 고구마를 그렇게 즐겨 먹지만

사실 고구마가 언제 어떤 경로로 들어와서

즐겨먹고 있는지는 까맣게 잊어먹고 있었기에

오히려 미안한 생각마저 들었다.

 

 

 

 

 

기념관이 그렇게 크지는 않다.

아담하기까지 하다.

 

 

 

 

 

사실 어린시절 고구마에 얽힌 개인적인 사연이 많다.

그 정도로 고구마를 즐겨 먹었기에 말이다.

 

 

오늘날 다양한 종류의 고구마들이

일반화 되어 있지만 당시의 고구마는

과연 어떤 종류의 것이었는지

문득 궁금하다.

 

 

고구마를

신의 선물이라 칭한다.

그 정도로 구황에 독보적인

작물이었다는 증거이기도 하겠지^^

 

 

 

 

 

기념관을 빠져 나와

그의 묘역을 둘러보기로 하고

기념관 바로 옆에 있는 사당을 지나친다.

 

 

그곳에는 하얀 봄이

주렁 주렁 매달려 있었다.

 

 

 

 

 

사당의 뒷편에는

작은 연못이 배치되어

제법 운치를 더하고 있다.

 

 

 

 

 

묘역으로 가는 길목엔

이렇게 신도비가 있었다.

 

 

서울에서 태어난 조엄 선생의

묘역이 이곳에 자릴 잡게된 연휴도

판서 출신을 많이 배출한 집안의 영향이

컸으리라 생각된다.

 

 

 

 

 

조엄 선생의 묘역은

기념관에서 5분여 정도 거리에 있으며

힘들지 않은 숲길을 지나게 된다.

 

 

그 길목엔 파릇 파릇 초록이 동색이다.

 

 

 

 

 

금새 선생의 묘역이 시선에 들어왔다.

묘역 주변을 다시금 정비한 흔적도 보인다.

 

 

 

 

 

묘역 안내 표지판에서도

고구마에 대한 이야기가 빠지지 않았다.

 

 

고구마 종자를 가지고 왔다는 사실이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사건이기에 말이다.

지금의 시선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조엄 선생의 묘역은 아주 평범했다.

웅장하지도 그렇다고 초라한 정도도 아닌

보통의 봉문이라고 생각되었다.

 

 

고구마를 전래한 문익공 조엄 선생을

이렇게 찾아뵐 줄은 감히 생각도 못했는데

도로변의 작은 간판 덕분에 득템을 한 기분이다.

 

 

 

 

 

어떻게 아셨는지

묘역을 둘러보고 내려오니

기념관 앞에는 다른 방문객들이

거닐고 있었다.

 

 

지금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어쩌면 아주 평범한 아니면 그냥

잊혀지기 쉬운 사소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분명한건 고구마가 미친 당시의 사회적 영향은

생각보다 훨씬 컸으리라고 생각된다.

 

 

원주시 지정면에 위치한

문익공 조엄 선생의 기념관과

묘역 방문은 아주 우연이었지만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문익공 조엄 선생님!

고구마 맛있게 잘 먹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