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답사기

강아지똥과 몽실언니의 아동문학가 권정생 선생을 찾아서...

금모래은모래 2016. 4. 11. 06:00

 




'몽실언니'

'강아지똥'

'엄마 까투리'


한국 아동문학의 거장 

고 권정생 선생님이 살아생전에

오랫동안 집필하시던 안동시 일직면 조탑리의

낡고 오래된 흙으로 만들어진 집을

가족들과 함께 다녀왔다.



 

마을 입구의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보물인 조탑리 오층전탑은 현재 보수중이었다.





 

여기서 150여m...

바로 맞은편의 골목길로 들어선다.





 

계속해서 직진하면 된다.

그러고 보니 조탑리 마을길 자체가

참 평온한 기분이다.


가지런한 흙돌담길이...





 

싱그러운 마늘밭을 지나

담을 타는 개나리를 또 지나간다.





 

마을이 끝날무렵

외진곳에 덩그러니 눈에 들어오는

고 권정생 선생이 살던 집...


아동문학의 거장이라 소개했지만

살아생전에 이런곳에 사시면서 집필활동을

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아동문학가 권정생 그는 누구인가?

 

권정생(1937. 9. 10  ~ 2007. 5. 17.)

 

일제강점기인 1937년 일본 도쿄의 빈민가에서

가난한 노무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광복 직후인 1946년 외가가 있는 경상북도 청송으로 귀국했으나

빈곤과 6·25전쟁 등으로 곧 가족들과 헤어졌다.

 

그는 대구, 김천, 상주 등 객지를 떠돌며

나무장수, 담배장수, 가게 점원 등

온갖 일을 하다가 폐결핵, 늑막염 등의 병을 얻어

1957년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으로 돌아왔다.

 

병이 깊어져 신장결핵, 방광결핵 등으로

전신에 결핵이 번져 생사를 넘나드는 가운데

더욱 그리스도교에 의지하게 되었다.

 

집안 형편으로 1965년 집을 나갔다가

1966년 다시 들어와 마을의 교회 문간방에서

살며 종지기가 되었다.

 

떠돌이 생활 중에도 많은 책을 읽고 글을 써왔으며,

건강이 호전되고 교회 문간방에 정착한 이후부터

작품을 발표하였다.

 

베스트셀러 작가된 된 이후에도

1980년대 초 교회 뒤 언덕에 지은

작은 흙집에서 살면서 검소한 생활을 하며

작품 활동을 하였다. 






 

자신의 소유로 가진 유일한 재산이었던

7평 남짓한 슬레이트 지붕의 흙벽돌집...

 

그분이 귀천(歸天)하면서 남긴 유언에는

이집마저 헐어 자연 상태로 되돌려 줄 것을 당부하셨지만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이 집은 1983년 송리, 조탑리 마을 청년들이

논흙을 파와 일직교회 마당에서 흙 볏짚 물을 배합하여

진흙덩이를 만들어 벽돌을 찍고 햇볕에 말려

빌뱅이 언덕으로 운반해 두 달 넘게

걸려서 지은 집이었다.







 

선생님이 살아 생전에 사용하시던

마당 한켠의 화장실... 





 

권정생은 1969년 단편동화 〈강아지똥〉을 발표하여 

동화 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하였다.

 

<강아지똥〉은 세상에서 가장 낮은 생명이

자기 희생을 통해 새롭게 태어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197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화부문에

<무명저고리와 엄마〉가 당선되었고,

1975년 제1회 한국아동문학상을 받았다.

 

장편으로는 대표적으로

1984년 출간한 〈몽실 언니〉를 들 수 있다.

텔레비전 프로에서도 상영된 바 있다. 

 

 

저서로는 동화집으로 〈강아지똥〉·〈사과나무밭 달님〉·

〈하느님의 눈물〉·〈몽실언니〉·〈점득이네〉·〈밥데기 죽데기〉·

〈하느님이 우리 옆집에 살고 있네요〉·

〈한티재하늘〉·〈도토리 예배당 종지기 아저씨〉·

〈무명저고리와 엄마〉·〈또야 너구리가 기운 바지를 입었어요〉·

〈깜둥바가지 아줌마〉 등이 있고,

시집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

수필집 〈오물덩이처럼 뒹굴면서〉·〈우리들의 하느님〉 등이 있다. 





 

저 돌을 보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선생님 떠가신지 어언 9년여의 시간이 흘렀지만

그때까지도 사용하시던 받침돌...

뭐라 할말이 없었다.

 




'헐'~~


방문은 잠겨져 있고

찢어진 문틈 사이로 앵글을 드밀었다.

조화 몇송이와 선생님의 영정이 놓여 있었다.

여러권의 동화책도 가지런히 ~~



방문객을 향해 미소를 머금고 계시는

선생님의 영정을 보는 순간 예상치 못한

나머지 상당히 놀랬다.  





 

생전에 선생님이 즐겨 찾으시던

빌뱅이 언덕에 올라 내려다본 선생님댁...


권정생 선생은

떠나서도 한줌의 흙으로 돌아가기 위해

이 빌뱅이 언덕으로 돌아오셨다고 전해진다.



빌뱅이 언덕

 

                 권 정 생


 

하늘이 좋아라

노을이 좋아라


해거름 잔솔밭 산허리에

기욱이네 송아지 울음소리


찔레덩굴에 하얀 꽃도

떡갈나무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도


하늘이 좋아라

해질녘이면 더욱 좋아라.






 

노란 개나리꽃들이 선생의 흙집을

에워싸듯 지키고 있었다.



귀밑 단발머리에다 땟국에 전 하양 저고리와

검정 통치마를 입고 등에는 갓난 이복동생을 업은 소녀 몽실이.

 

권정생 선생님의 <몽실 언니>가

2012년 4월 30일 출간 부수 100만부를 돌파했다.

1984년 발표된 지 28년 만이다.

 

아동문학에서 100만부를 돌파한 책은

김중미의 <괭이부리말 아이들>,

권정생의 <강아지똥>,

황선미의 <마당을 나온 암탉>과

<나쁜 어린이표>에 이어 다섯 번째다.

  

원종찬 아동문학평론가는 고 권정생 선생님을

"한국 아동문학이 낳은 불멸의 주인공” 이라고 칭했다.


이주영 아동문학 박사는

"몽실 언니는 아동문학도 예술작품이란 평가를 받으면서

후배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작품” 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권정생을 밀리언셀러 작가로 기억하지만

산문집에 비친 그의 삶에는 힘든 생활과 뼈아픈 질병밖에는 없었다.

19세에 발병한 결핵이 신장, 방광을 넘어 전신 결핵으로 이어졌다.

 

겨울밤의 고통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적었다.

 “소변보기가 어려워졌다. 10분, 5분으로 변소에 드나들어야 했다.

아예 깡통을 기도하는 옆에다 갖다 놓고 밤을 새웠다.

어느 사이에 ‘어이 추워, 어이 추워’로 바뀌어 버린다.”

지쳐 까무룩 잠이 들어 깨보면 어느새 온통 바지가 젖어있었다.

새벽에 우물에 가서 손수 바지를 빨며,

고인은 서럽게 울었다.

가난한 집의 부담을 덜어주려 집을 떠난 고인은

3개월 동안 구걸을 하며 보내기도 했다.

현실은 생각보다 더 참담했지만

문학만은 아름다웠다.  


 

 

거 지

 

           권 정 생

 

 

거지를 만나

우리는 하얀 눈으로

마주 보았습니다

 

서로가

나를 불행하다 말하기 싫어

그렇게 헤어졌습니다

 

삶이란

처음도 나중도 없는

어울려 날아가는 티끌같이

바람이 된 것뿐입니다. 





 

4년전에 우연히 다녀가고

이번이 두번째 방문이었지만

가슴 한켠은 늘 애잔하기만 했다.





 

생전에 남기고 간 작품은 100여 점에 이른다.

‘강아지똥’‘몽실언니’가 각각 100만부 넘게 팔렸지만

그의 삶은 크게 변한게 없었다.  



그는 책에서 연유를 이렇게 밝혔다.

“분수를 지킬 줄 모르면 그 이상 불행할 수가 없을 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처지에 알맞게 행동하며 지나친 욕심을 버린다면

타인에게 끼치는 해가 훨씬 줄어들 것이다.”





 

마당 한켠에 자리잡은 또 다른 작은 집...

다른 식구가 없었던 선생님이 기르던

멍멍이네 집이 아닐까?





 

고인이 아껴 모은 10억원과 인세는

2009년 설립된 권정생 어린이 문화재단에 돌아갔다.

 


그의 작품들은 여전히 널리 사랑받아

매년 1억 5000만원의 인세가 재단의

운영비로 기탁되고 있다.  





 

6·25전쟁의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은

여자아이를 그린 ‘몽실언니’는 요즘도 매년 4만 부가 팔린다.



재단은 매해 전국 소외지역 공부방에

총 1만1000권이 넘는 책을 지원하고 있으며,

북한 어린이들을 위한 급식 지원과

결핵사업 지원에도 매년 3900만 원을 후원하고 있다.

 

앞으로는 국내 어린이들을 위한 장학사업에도 나설 계획이다.

고인의 보석 같은 동화 작품들이 그의 분신처럼 남아

어린이에 대한 사랑을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돌아나오는 길의 조탑리 마을...


무너진 흙담이 오히려

시골스럽고 더 정겹다는 생각이다. 




 


권정생 선생님이 사망한 후에,

 

그가 살았던 동네를 찾아간 사람들이

들은 이야기는 듣는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그 사람 평생 자신을 위해서 돈 쓰는 것을 못봤어."

 

"부녀회에서 김치라도 해다주면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 갖다주라고 했어.

참 겸손하고 천사같은 사람이지.

예수가 따로 없어."



그는 그렇게 떠나갔지만

그의 책은 지금도 팔리고 있다.

그의 맑은 영혼으로 노래한

귀한 동화책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