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유적지를 다녀왔습니다.
남양주 북한강변에 위치한 다산 정약용 선생의
생가인 여유당과 선생의 묘지를 더불어 돌아보았습니다.
늘 그러하듯 선생의 묘지 앞에서는
아무말 없이 누가 시키지 않아도 묵념을 하게 되더군요.
이제 서서히 들어가 봅니다.
부가 설명보다는
사진으로 이해하는것도 좋을듯합니다^^
다산 문화관...
다산 선생의 저서로는 어떤것이 있을까?
저서에 《정다산전서》가 있고,
그 속에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마과회통》 《모시강의》
《매씨서평》 《상서고훈》 《상서지원록》 《상례사전》 《사례가식》 《악서고존》
《주역심전》 《역학제언》 《춘추고징》 《논어고금주》 《맹자요의》 등이 실려 있다.
강진 유배시절 총 500여권의 책을 써
그의 학문적 업적은 이루 말할 수 없는것 같다.
화성 축성때의 그 거중기가 재현되고....
안으로 들어가 볼까요^^
저곳이 바로 생가인 여유당입니다.
여유당은 뒷편의 묘지를 다녀온 후 자세히 둘러보겠습니다.
묘지 입구의 다산 정약용 선생 상...
묘지가 있는 야산? 언덕?
하여간 여유당 뒷편에 이렇게 작은 야산 언덕의
묘지로 올라가 보겠습니다.
다산 정약용선생의 지묘.
부인과 함께 합장한 합장묘입니다.
이곳에만 오면 문득 고개가 숙여지고
꼭 묵념을 하고 가게 되더군요.
공직자로서의 자신을 다시금 되새김하며
스스로를 반성하고 생각하게끔하는 그런 말입니다.
묘지에서 바라본 아래 여유당...
이제 묘지에서 내려갑니다.
나무와 고택이 참 좋습니다.
18년의 긴 유배에서 돌아온 다산선생은
노자의 말에 여(與)여!! <겨울의 냇물을 건너는듯 하고>
유(猶)여 !! <사방을 두려워 하는 듯 하거라>와 堂자를 붙여
생가에 여유당이란 현판을 걸었다.
1800년의 봄에 유배에서 풀려났으나 자신을 둘러싼 세상의 기운이
심상치 않음을 알고 사방을 두려워 하고 조심스럽게
살아가고자 하는 의미의 뜻이다
열려진 문사이로 슬그너미
들여다 봅니다.
이제 안으로 들어가 볼까요^^
얼마나 정확하게 고증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생활하시던 공간도 상당히 정교하게 복원되어 있습니다.
문고리도 한번 잡아보구요^^
여유당에서 바라본 뒷산의 묘지..
정약용은 실학의 대가로서 당시 실학을 정리하고 집대성한다.
정약용의 업적은 정말 많다. 조선시대 최고의 학자라고 불리는 것도
다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것을 보면 모두 공통점이 있다.
다 실학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정약용은 전통적으로 중농학파였다.
즉 농사를 중시하는 학자였는데, 이러한 그는 북학파라고 불리는 중상학파 또한 포용하였다.
결과적으로 당시 실학을 모두 아우름으로서 그 가치를 더욱 빛나게 한다.
걸어 나가면서
그의 실학자로서의 업적도 느낄 수 있다.
입구 주차장의 화장실도
이렇게 멋지게 되어 있더군요^^
다산 유적지는 이번이 두번째 방문이었는데도
늘 그러하듯 맘은 상당히 차분해 집니다.
대한민국 공직자로서 살면서 힘들거나
또는 근무가 힘들어 지칠때 조용하게 다녀오고 싶은 곳입니다.
남양주의 다산정약용 선생 유적지를 둘러보았습니다.
'문화유산 답사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천여행] 설봉산 자락의 영월암에는 아름다운 보물이 있다... (0) | 2013.03.05 |
---|---|
[충주여행] 고요의 멋스럼이 발길을 잡는 최함월 고택... (0) | 2013.03.04 |
아름다운 간이역 양평의 구둔역엔 이제는 기적은 울지 않는다... (0) | 2013.02.15 |
꽈배기처럼 꼬인 신비로운 소나무 반룡송 이야기.. (0) | 2013.02.14 |
봉화 닭실마을의 자존심 청암정의 겨울빛 이야기... (0) | 2013.02.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