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길
천상병
길은 끝이 없구나
강에 닿을 때는
다리가 있고 나룻배가 있다.
그리고 항구의 바닷가에 이르면
여객선이 있어서 바다 위를 가게
한다.
길은
막힌 데가 없구나.
가로막는
벽도 없고
하늘만이 푸르고
벗이고
하늘만이
길을
인도한다.
그러니
길은 영원하다.
꼭 가야 하는 길
-정동묵-
걸어가지 못하는 길을
나는 물이 되어 간다.
흐르지 못하는 길을
나는 새벽안개로 간다.
넘나들지 못하는 그 길을
나는 초록으로 간다.
막아도, 막혀도
그래도 나는 간다.
혼이 되어
세월이 되어
그래, 길이 있다
이하석
그래, 길이 있다
굴참나무 울창한 숲을 안으로
가르며,
전화줄처럼 명확하고도
애매하게,
길이 나
있다
아침을 지나 아무도 없는
숲 안에서
나는 외롭고,
지나치게, 무섭다
길 저쪽
깊은 숲속으로 곧장 난
길 저쪽
어쩌면 길 저
끝에
무엇인가가 있는 듯
느껴진다
굴참나무 잎들이 쌓인
숲 저 안,
어둠의 폭풍이
소용돌이치는 곳
길
윤동주
잃어 버렸읍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어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어
길 우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 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어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